2018년 A씨는 경주에서 렌트카 사업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의 렌트카 업체가 소유한 자동차는 사실 한 대도 없었다는 것이다. 자동차 없이 렌트카 업체를 운영한 A씨의 비결은 무엇일까.
대포차 매각 사기죄로 2017년 징역을 마치고 나온 A씨는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자동차대여사업자로부터 장기임차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이 허점을 노려 주위의 지인들에게 캐피탈 업체로부터 자동차를 장기로 빌릴 수 있게 명의를 빌려주면 대가로 이용료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름만 주면 매달 상당한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은 주변인들은 A씨에게 명의를 빌려줬다. 이런 방식으로 A씨는 캐피탈 업체로부터 총 131대의 자동차를 빌려 무등록 자동차대여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 없이 렌트카를 차린 A씨의 업체에 등록된 차들의 자산가치만 89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A씨가 벌인 불법사업의 수익성이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BMW 430i, 벤츠 CLS 400d, 레인지로버 등 고급 자동차를 준비했지만 렌트카 사업은 적자 상태였고 A씨는 곧 고객들의 선납 보증금으로 자동차들의 월 임차료를 돌려 막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A씨는 대범해졌다. 대여 자동차 중 일부를 해외에 밀반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동차 수가 늘어나고 사업이 확장될 때는 자동차 임차료를 납부할 수 있었지만 힘들어지자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 방법을 찾은 것이다.
꼬리가 길면 범인은 잡히기 마련이다. A씨는 명의대여자들에게 1년 또는 일정 기간 경과 후 명의이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는데 실제 자동차 임대차 계약 기간은 대부분 60개월이었다. 여기에 더해 임대료 납입이 힘들어지자 자동차대여사업자인 캐피탈 업체들이 압박해 오고 명의대여자들도 사정을 설명하라고 하자 A씨의 숨을 곳은 없어졌다. 그러나 A씨는 이후 자신을 상대로 한 수사를 인지한 상황에서도 자동차를 반납하지 않고 사업을 영위하는 등 배짱을 부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법정 앞에 다시 선 A씨. 그의 죄목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는 “피해자 회사들로부터 출고한 대여자동차에는 고가의 수입차가 다수 포함돼 그 편취 규모가 상당하고 일부는 해외로 밀반출하기도 했다”며 “범죄사실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누범 기간 중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A씨는 나온 지 얼마 안 돼 감옥에서 다시 4년을 보내게 됐다.
A씨는 감옥에 갔지만 자동차들은 어떻게 될까. 형사 실형 판결이 선고된 상황에서 A씨에게 피해를 본 렌트카 업체들은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을 대상으로 법적 절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울지법 형사21부는 “피고인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의 경우 피해자 회사들과의 관계에서 대여자동차 반환, 연체금 지급 여부 등의 문제로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A씨는 가족의 명의도 빌려 자동차를 대여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명의 대여는 위험한 일이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은 이유가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은 거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