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부채 규모에 법적 제한을 둔 것은 포퓰리즘에 거부감을 갖는 국민 여론과 관련이 깊다. 2016년 스위스에서는 국가연금 지급액을 10% 올리자는 법안과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가 두 차례 진행됐지만 모두 부결됐다. 특히 스위스 국민의 76.7%가 기본소득에 반대했다. 독일 또한 헌법에 ‘신규 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0.35% 이내여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통일 이후 급격히 늘어난 정부 지출을 통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경기가 좋았을 때 나라 곳간을 아낀 덕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지출을 늘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스위스와 함께 유럽의 재정 모범국가로 꼽히는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스웨덴·덴마크 등 이른바 ‘검소한 4개국’은 최근 7,500억유로(약 1,060조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에 대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의 합의 과정에서 보조금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갚을 필요가 없는 보조금보다는 재정건전성에 도움이 되는 대출 위주로 기금을 구성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당초 EU 집행위원회는 5,000억유로를 보조금으로, 나머지 2,500억유로를 대출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이들 국가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면서 EU 정상들은 7월 말 결국 보조금 3,900억유로, 대출 3,600억유로로 최종 합의를 이뤘다.
검소한 4개국이 반대 목소리를 크게 낸 것은 그동안 지켜온 재정건전성이 나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세수가 목표치를 초과해 걷히면 초과분의 절반을 국가채무를 갚는 데 쓰도록 하고 있다. 또한 스웨덴은 ‘GDP 대비 1%의 재정수지 흑자’를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준칙 덕에 지난해 말 기준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국가채무비율은 각각 48.6%, 35.1%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84.1%)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