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공감]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무뎌진다. 나도 사람인지라 무뎌져야지만 내가 살아갈 수 있었다. 병원이라는 곳은 죽음과 가깝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더 무뎌져야만 했다. 매일매일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했다면, 나는 그 우울이라는 바다에 빠져 잠식해버리지 않았을까? 나도 살기 위해 무뎌졌다. 아니, 무뎌진 거라고 생각했다. (중략) 처음부터 다들 죽음 앞에 무디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무뎌지지 않으면 매일 자신이 무너지는 상황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죽음이 마음 깊이 느껴졌으면 한다. 누군가의 삶과 그 가족의 슬픔이 죽음 앞에서는 마음 깊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무뎌지기보다는 스며들기를.’ (이라윤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2020년 문학동네 펴냄)






간호사 이라윤 작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환자들이 있는 중환자실에서 일한다. 질긴 투병 끝에 회복해 일반병실로 가는 환자도 있지만 의식이 없는 채로 들어왔다가 생명의 신호가 완전히 끊기고 가족들의 오열 속에 죽음을 맞는 환자도 부지기수다. 환자들이 삶의 세계로 넘어오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간호하지만 그 간절함이 깊을수록 사망한 환자의 텅 빈 병상을 바라보는 일은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오래 일하려면 살아남으려면 그 죽음들에 일일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지만 이내 한 사람의 죽음에 무덤덤해지는 자신이 ‘괴물’ 같아서 간호사는 또 뒤척인다. 결국 그가 찾아낸 일과 삶의 좌우명은 ‘무너지지도 무뎌지지도 말자’는 것이었다. 매일 덮쳐오는 슬픔과 패배를 정확히 받아들이되 그에 매몰돼 붕괴되지 않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우울감을 호소하는 ‘코로나 블루’가 우리 주변을 맴돈다. 우리는 지금 각자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은 물론 일상과 경제, 멘털의 붕괴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당신의 건승을 기원한다.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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