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국가주도 정책은 경제학자들에게 논란의 대상이다. 과도한 국가 개입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우려를 나타낸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에 내정된 정진욱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는 시장을 너무 힘으로 누르려 한다”며 “국가만능주의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이어 “경제정책이 이념의 노예가 되고 있다”면서 “특히 부동산 시장의 경우 양치기 정책이 온 국민을 방어적 투기로 몰아넣었다”고 지적했다. 9일 정 교수와 만나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제 경로와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한국은행이 올 성장률 전망치를 -0.2%에서 -1.3%까지 낮췄다. 경제 쇼크는 얼마나 될까.
△코로나19로 총수요가 급격하게 위축됐다. 총수요가 줄어든 최근 사례는 외환위기였다. 환란 때는 금융이 무너지면서 파산이 속출해 예산이 많이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금융 붕괴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총수요 위축은 비슷하다.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코로나19가 되레 큰 것 같다. 재택근무를 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환란 때는 수출로 버텼는데 지금은 모든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 수출이 잘되지 않는다. 종합적으로 보면 환란 때보다 타격이 더 크다. -1.3% 전망은 낙관적이다.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내년에는 반등할 것으로 보는데.
△(한은이 내년 성장률로 전망한) 2.8%는 좀 높다. 내년 상반기까지 백신이 나오면 소비감소가 완화되며 반등할 것이다. 생산기반이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한다. 생산기반을 잘 보존하면 V자 반등도 가능하다. 환란 때 우량 중소기업들이 무너진 일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 재난지원금은 모든 국민에게 주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좋겠지만 모럴해저드를 낳는다. 중소기업에 저리 융자를 해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조금이라도 이자를 내게 해 생산기반을 보호하면서 정부 부담을 줄여야 한다. 무이자대출은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키지만 이자를 낼 수 있는 기업들만 대출을 받으니 한계기업을 정리하고 우량기업을 살릴 수 있다.
-세계 경제의 흐름도 관심이다. 코로나19 재확산과 미국 대선 등 변수가 많다.
△미국의 국수주의적 변화나 중국과의 갈등은 신자유주의 쇠퇴로 생겨난 현상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보호무역은 계속될 것이다. 과거에는 내수기반이 작아 수출을 해야 낙수효과로 성장했지만 노동집약에서 기술 주도로 넘어가면서 낙수효과가 줄고 있다. 기술 개발을 위해 유보금을 쌓으니 낙수효과가 더 없다. 내수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는 내년에도 555조원 넘는 초슈퍼 예산을 책정했다. 반면 국가채무 증가 우려도 크다.
△예산 규모보다는 용처가 중요하다. 최대한 생산성이 높은 곳에 써야 한다. 지금까지 예산은 공공근로 등에 주로 들어갔는데 이는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복지도 생산성과의 연관성이 떨어지고 승수효과 또한 거의 없다. 나랏빚 역시 적정 규모에 앞서 중요한 것은 용처다. 재정으로 생산성을 올릴 수만 있다면 효과를 후대가 물려받아 갚을 여력이 생긴다. 하지만 올해 이미 편성된 세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을 보면 생산성이 있는 곳에 썼다고 하기 어렵다. 제대로 쓰지 않으면 빚만 후대에 물려주게 된다.
-한국판 뉴딜에 20조원 넘는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그린뉴딜·디지털뉴딜 등을 말하는데 생산성을 얼마나 높일지 모르겠다. 그린뉴딜은 생산성을 되레 떨어뜨릴 수 있다. 그린이라는 단어는 효율성보다 형평성에 무게가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 뭉칫돈이 들어가야 해결될 문제가 두 가지 있다. 공교육과 지방 인프라 확충이다. 공교육이 살아나야 교육이 정상화되고 부동산도 좀 안정된다. 기업들은 지방으로 이전하면 혜택을 준다 해도 기반시설이 약해 가지 않는다. 두 분야에 큰돈을 투자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 그렇지만 큰 그림을 그리지 않고 공공근로만 얘기한다.
-재정지출이 급증하면서 증세론이 나온다.
△증세는 소득을 빼앗게 돼 총수요를 줄인다. 총수요를 유지해야 생산기반을 지킨다. 증세를 얘기할 시기가 아니다. 지금은 재정의 효율성에 집중해야 하며 총수요 확대에 목표를 둬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시장 개입이 과거 정부보다 확대되고 있는데.
△현 정부가 시장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부동산은 물론 유통·운수업 등 정부 규제가 너무 많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잘 구분해야 하는데 정부의 역할을 너무 크게 보고 있다. 자꾸 힘으로 밀어붙인다. 시장은 완벽하지 않지만 가장 효과적인 운용자다. 시장에 맡기면 호미로 막을 일을 정부가 나서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정부는 이윤 동기가 없어 정책을 펴다 정권이 끝나면 그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실함을 찾기 힘들다. 단기목표에 집착하고 선심을 쓰려고 해 포퓰리즘이 생긴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폐단을 불러온다는 뜻인가.
△역사적으로 정부가 힘으로 시장을 누르려 한 사례는 많다. 하지만 시장을 이긴 경우는 없다. 미국이 1920년에 금주법을 시행했지만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 짐바브웨는 2007년 7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재화 가격을 반으로 낮췄다. 감독관을 보내 문을 닫고 가격을 내리지 않는 사람을 체포했다. 당시 독재자였던 고(故)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힘은 지금 우리 정부의 수백 배나 됐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생겼다. 무가베도 시장을 못 이긴 것이다.
-정부만능주의라는 말도 나온다.
△대통령 입에서 부동산과의 전쟁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는 정부가 힘으로 시장을 누르겠다는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시장을 억누르는 정부만능주의는 결국 실패하고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니까 대출 규제를 하고 전셋값까지 통제한다. 그것이 정부만능주의다. 의사 수급에 관한 정부 결정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의사들과 소통하지 않고 시행하려는 접근방법 자체가 정부만능주의다.
-경제정책의 이념화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은데.
△현 정부만큼 선의를 가진 정부는 없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선의를 지녔다고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다. 옳은 이념을 가지면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는데 실패 사례가 많다.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택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선의로 부동산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왔다. 이념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념을 현실화하는 방법이 문제다. 경제 정책들이 이념의 노예가 되고 있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 발상을 배웠으면 좋겠다.
-부동산 정책을 언급했는데 20번 넘게 대책을 내놓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시장경제에서 내구재에 대한 투기는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현 정부는 부동산이 투기 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죄악시한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면 빼앗을 테니 알아서 투기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은 계속 실패했다. 정책을 강하게 써도 실패하니 정부가 양치기 소년이 돼 신뢰를 잃었고 결국 온 국민이 투기세력이 됐다. 국민들은 방어적 투기를 한다. 지금은 특정 투기세력에 대해 얘기할 단계를 지났다. 정부는 국민을 착한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하지만 눈앞의 이익을 놓고 착해질 국민이 어디 있나. 부동산에 몰린 돈을 증시로 돌리고 싶다면 부동산에서 번 돈은 모두 빼앗겠다는 이념적 집착을 버려야 한다. 정부는 초과이익을 무조건 환수하겠다고 하는데 시장 경제를 부정하는 말이다. 자기가 싸게 사서 본 이득을 정부가 빼앗아 갈 이유는 없다. 이는 사회주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헌법부터 바꿔야 한다. 온 국민이 집 한 채만 갖고 이사도 하지 않는 것을 무릉도원이라고 생각한다면 경제운용 면에서 불가능하다. 정부만능주의의 발현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이 효과적인가.
△정책 실패로 늘어난 수요를 억지로 막으려다 방어적 투기 수요가 발생하니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뒤늦게 공급을 늘리겠다면서 신도시 건설을 꺼냈는데 이는 회임 기간이 길어 공급 효과가 거의 없다. 지금은 매물이 나오게 해야 한다. 신도시 건설은 하책이고 재건축은 중책이다. 상책은 양도소득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늘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른 시일 내에 가격이 안정될 것이다. 가격을 누르면 불로소득도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주력산업에 대한 걱정이 많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는가.
△경쟁력은 기술과 생산성에서 나온다. 기술력은 최상위지만 생산성은 우려스럽다. 특히 노동생산성 저하는 위험한 수준이다. 우리나라에 공장을 지으려다 철회한 기업들에 물어보면 우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꼽는다. 생산성을 임금이 초과하는 현상도 많다. 규제도 문제다. 현 정권은 시장에서 이뤄져야 할 혁신조차 정부가 하려 한다. 기업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규제뿐 아니라 정부 기관들의 ‘협조 요청’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한다. 듣지 않으면 나중에 꼬투리를 잡히고 몇 차례 당하면 다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규제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