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기심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부메랑’을 만난 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은 전 인류의 일상을 뒤흔들면서 ‘이전과는 다른 세상’의 시작을 알렸고, 변종에 변종을 만들어내며 인간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상고온 속에 50일 넘게 이어진 장마와 잇단 태풍은 곳곳에 피해를 남겼으며, 남극의 빙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달궈진 프라이팬 속의 버터처럼 녹아내리고 있다. 인간이 ‘더 풍요롭게’를 외치며 자연을 착취하는 사이 지구는 바뀌었다. 아니 망가졌다. 도대체 이 행성에선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랩 걸’로 국내에서도 알려진 여성과학자 호프 자런은 자신이 살아온 지난 50년 동안 일어났던 일을 중심으로 지구 생태계의 변화를 살펴본다. 여섯 살 때 ‘커빙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얼음덩어리 친구를 소개하며 녹아내리는 빙하를 이야기하고, 캐나다의 어린이 하키 리그 시즌을 야외 아닌 실내 경기장으로 옮겨서 진행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식물 생육장을 만들어 진행했던 탄소 실험, 브라질의 어류학 실험실에서 물고기들의 멸종에 대비해 이뤄지던 기록 연구 등 생태 위기에 대비하는 과학 현장으로도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의 어린 시절과 일상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 이면의 현실, 즉 불평등과 자원 고갈, 넘쳐나는 쓰레기, 그리고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여겨지는 기후변화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책은 갑갑한 현실을 진단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책의 부록 ‘지구의 풍요를 위하여’에는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생태계를 고려하며 살도록 돕기 위한 저자의 조언이 담겨 있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가 얼마나 고통을 겪을지와 관련해 무언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행동을 취하길 원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의미를 가질 동안에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한국의 독자들에게 특별히 보내온 서문도 인상적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너는 가해자’라며 겁주고 ‘인류가 받을 벌’을 쏟아내는 책이 아닌, ‘(바꾸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하는 책이다. 1만 5,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