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철수칼럼] 달빛 코미디

백상경제연구원장·서울경제 논설고문

오철수 백상경제연구원장오철수 백상경제연구원장



남북관계 꽁꽁 얼어붙어있는데

북한기업 국내투자 허용 헛발질


이념 포로된 현실성없는 정책은

오히려 문제 해결 어렵게 할 뿐


“우리 국민들은 집을 사지 못하게 막아놓고 북한 기업들은 국내에서 ‘줍줍’하도록 하겠다는 거냐.” “실거주 강조하더니 북한인들은 어떻게 실거주하나.” 통일부가 지난 8월27일 입법예고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우리 국민들의 부동산 투자는 투기로 몰아세우며 가로막고 있는 정부가 북한에는 투자의 길을 열어줬으니 국민들이 발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국민들에게 집을 사지 못하게 하는 동안 중국인들이 3조원어치나 사들였는데 이제는 북한까지 끌어들이냐”는 반응도 나왔다. 외교부까지 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등을 들어 우려를 제기했지만 통일부는 북한 기업의 한국 내 영리활동 허용을 골자로 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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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제재 등으로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 통일부는 왜 이 같은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아마도 운동권 출신의 이인영 장관이 통일부 수장으로 온 후 조급증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취임 직후 직원들에게 ‘대담한 변화’를 강조했던 이 장관은 최근 남북관계 복원작업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부쩍 조바심을 내는 모습이다. 통일부가 정부 내 조율도 없이 북한과 물물교환의 장을 열겠다고 나선 게 대표적인 사례다. 개성고려인삼무역회사 등 북한 기업이 대북제재 대상인데도 불구하고 의욕만 앞세워 일을 추진했다가 결국 국가정보원의 반대로 뜻을 접어야 했다. 이 장관의 취임 이후 통일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이 같은 삐걱거림은 비단 통일부에 국한된 현상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대북정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남북협력을 최우선시하는 우리 정부는 북한에 저자세를 보이며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지만 당면한 현안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된 것이 없다. 해결은커녕 되레 꼬여만 가고 있다. 북한은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약속한 비핵화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핵물질 생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능력만 강화하고 있다. 6월에는 남북협력의 상징과도 같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해버렸고 최근에는 남북 간의 소통채널도 아예 닫아버렸다. 이게 ‘달빛정책’의 현주소다.

그동안 북한에 그렇게 구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왜 계속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우리 정부 관계자들의 시야가 남북관계에 매몰돼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지금 우리의 안보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안보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우리는 미중 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남북만으로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대 과제인 북한 비핵화도 그렇고 종전 선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 당국자들은 ‘우리 민족끼리’ 식의 운동권적 사고에 젖어 남북만 손잡으면 뭐든지 해결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특히 북한과 미국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념에 사로잡혀 우리만 조바심낸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쯤 해서 우리의 대북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 당국자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봐왔듯이 북한은 비핵화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비핵화 협상을 빌미로 괌에 있는 미군의 전술핵을 없애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북핵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평화·남북협력 운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퍼주기를 했음에도 북한의 핵 개발 능력만 키워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다시 밟을 뿐이다. 지금은 남북 물물교환이나 인도적 지원 같은 자잘한 아이템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북핵 해결이라는 보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당국자들은 북핵이 해결되지 않고는 그 어떤 남북 협력사업도 공염불일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csoh@sedaily.com

오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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