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대출 모니터링 예고에도 신용대출이 이달 들어 1조원 이상 불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신용대출 금리가 오르고 대출 한도도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일단 받고 보자’는 식의 가수요가 더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이달 10일 기준 신용대출 잔액은 125조4,17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 대출 잔액 124조2,747억원과 비교하면 불과 10일만에 1조1,425억원이나 불어난 것이다. 현재 속도가 이어진다면 신용대출 증가폭이 역대 최대였던 지난달(4조755억원) 수준과 유사한 증가폭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1.85∼3.75%로 지난달 14일 금리 밴드(1.74∼3.76%)에 비해선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고신용자들은 2% 안팎의 신용대출이 가능하다. 여전히 2~4%대 수준인 주택담보대출보다도 낮은 금리다.
우선 신용대출 증가세가 멈추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사상 초유의 초저금리와 주식·부동산 등의 투자수요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이달 초 진행된 카카오게임즈 공모주 청약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58조원의 증거금이 몰렸는데 청약이 진행된 이달 1~2일, 5대 시중은행에서 늘어난 신용대출 잔액만 4조7,000억원에 달했다. SK바이오팜 등 공모주 투자 대박 사례가 연일 화제가 되면서 과열 양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자금은 부동산 구입이나 전세 보증금 마련을 위한 ‘영끌’ 대출 성격으로 부동산 시장에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거듭 신용대출 자금 용도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를 주문하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 예고로 당장 자금이 필요치 않은 이들까지 ‘우선 받고 보자’ 식의 대출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자 부담이 크게 낮아지면서 필요 자금 이상으로 대출을 받아두는 대출자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당국이 본격적으로 ‘대출 조이기’에 나서기엔 부담이 크다. 신용대출 증가폭 중 어느 정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영향인지 정확하게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중 상당수가 생활고와 경영난이 이어진 서민들의 생계용 대출이라면 당장 대출 관리에 나서기도 어렵다. 중저신용자들의 대출이 주로 몰리는 캐피탈·카드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신용대출 증가 속도도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2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지난 3∼5월에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감소세를 보였으나 지난 6~8월 월 평균 증가세가 각각 5,000억원, 1조8,000억원, 2조2,000억원씩에 달했다.
신용대출이 이례적 속도로 단기간에 불어나자, 금융당국도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은행 담당 실무진과 회의를 열고 오는 14일에는 고위급 책임자들과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관건은 생계형 대출에 대해선 자금 지원 기능을 강화하되 투자용 대출에 대해서만 속도를 제한하는 핀셋 규제가 가능한지 여부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가 급변하는 경우 빚을 갚지 못하는 대출자가 늘어날 수 있고 이 경우 대출 기관의 건전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만큼 대출 용도에 따른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러나 현재 시스템으로는 신용대출의 용도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규제에 나서더라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