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이인호 "코로나發 유동성 과잉 최대 난제…치료제가 긴축 신호탄"

[서경이 만난 사람-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

   인류-바이러스 장기간 공존 불가피…'위드 코로나' 대비해야

   자금 공급에 치중한 한국판 뉴딜, 혁신 뒷전·시장 왜곡 가능성

   현 부동산정책은 '백약이 무효'…담당자 바꿔 분위기 쇄신 필요

“코로나로 인한 유동성 과잉이 최대 난제가 됐습니다. 유동성으로 주식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가 계속 벌어지면 돈이 비생산적인 곳으로 몰리고 상승 작용을 일으켜 경제에 버블(거품)이 생길 우려가 커집니다.”

한국경제학회 회장으로 경제학계 최고 석학 중 한 명인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촉발한 가장 큰 경제위기 요인을 이같이 진단했다. 지난 1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코로나 19가 통제되기 시작할 때 유동성 과잉 문제에 제일 먼저 대응해야 한다”면서 코로나19 치료제가 정책당국의 긴축 신호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이끌었듯이 코로나19 위기가 영세자영업과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가 되도록 정부가 힘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회장은 부동산 시장의 혼란에 대해 “20번 넘는 대책에도 계속 집값이 오르니 어떤 대책도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가격을 올리면서 시장이 엉망이 됐다”며 “정책 담당자를 바꾸는 ‘분위기 쇄신’ 외에는 방법이 없고 시장에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은 안 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판 뉴딜’에 대해서는 “정부가 돈을 주는 것에 집중해 혁신은 뒷전이 됐고 시장을 왜곡할 가능성만 크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담=손철 경제부 차장 runiron@sedaily.com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이호재기자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이호재기자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정책은 ‘중환자에게 운동을 하라’는 격이라고 이 회장은 지적했다. 그는 “통화 긴축은 코로나19로 ‘숨이 넘어가는 환자에게 뛰라고 하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상당히 조심해서 (시장을) 달래가며 완화정책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유동성 회수의 조건으로 코로나19 통제를 언급했다. 그는 “백신이나 치료제 등으로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경제가 조금씩 회복될 것”이라며 “경기가 돌아오는 조짐을 보이면 (유동성 회수를) 천천히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완전한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쉽지 않은 만큼 치료제가 먼저 나와 코로나19가 더 이상 치명적인 감염병이 아닌 것으로 인식될 때를 경기회복의 시발점으로 봤다.


부동산 시장 혼란에 대해서는 강도 높게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20번 넘는 대책으로 ‘부동산은 어쨌든 오른다’는 통념을 전 국민의 일반상식으로 만들어버렸다”며 “시장이 설명할 수도 없게 엉망이 돼버렸다”고 한탄했다. 그는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가격이 오른다고 인식하며 ‘패닉바잉’이 생긴 후 실제로 값이 올랐다”며 “이제는 정부 정책에 조건반사처럼 오르는 식이 됐다”고 답답해했다. 이 회장은 이 같은 경제현상을 ‘자기충족적 기대’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하면 집값이 떨어져야 하는데 사람들은 ‘수도권에 집이 얼마나 없으면 아파트를 저렇게 많이 짓겠느냐’고 걱정하면서 집값 인상과 부동산 매수를 합리화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 경기를 부양한다고 기준금리를 낮췄더니 ‘경제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으면 금리를 낮추겠느냐’며 증시가 급락했던 것과 비슷한 사례가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은 “시장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정부”라고 딱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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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부동산 시장 혼란의 해결책은 “분위기 쇄신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정책 담당자를 경질해 정책수단이 바뀔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야 한다”며 “이제는 다르다, ‘속 차리고 새롭게 간다’는 믿음을 시장에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징벌적 세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징벌하고 싶다면 차라리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 나은데 부동산 투자 자체가 범죄가 아니만큼 징벌적 세금이나 과징금 부과는 모두 말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은 실물경제가 과잉 유동성을 흡수하는 기능을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회장은 한국판 뉴딜이 내세우는 정책 목표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자금 공급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판 뉴딜 재원의 근거도 불분명하지만 일단 돈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끼워 맞춰 지출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는 “민간이 혁신적 사업들을 내놓고 실물경제에서 필요하다고 했을 때 (정부가) 돈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지 돈 먼저 쌓아놓고 마음대로 쓰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면서 “시장을 왜곡하고 혁신도 일어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경제 전반의 디지털 혁신과 역동성을 촉진하겠다는 정부 전략부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자꾸 혁신을 말하는데 누가 뭐라고 해도 정부는 혁신에 맞지 않는 조직”이라며 “기술 혁신은 민간에서 성공했을 때 돈을 엄청나게 벌 수 있다는 기대로 하는 것이지 성공하든 안 하든 정부가 돈을 주기 때문에 하는 것은 혁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자리 목표에 대해서도 절대 달성할 수 없다며 “거짓말”이라고 단언했다. 이 회장은 “디지털뉴딜만으로 사람들을 모두 고용할 수는 없다”며 “코딩으로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하듯이 대규모 고용을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대신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 기회를 제공하면 주변에서도 돈을 버는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이호재기자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이호재기자


경제학자에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불황은 기존과 다르다고 진단했다. 통상적으로 경기불황은 자연재해나 화재 등으로 생산시설이 망가져 공급에 교란이 오거나 채산성 없는 투자로 부도가 나기 시작하는 경우에 발생하는데 이번에는 생산시설에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위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에 역설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시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증명됐다고 했디. 이 회장은 “이번 불황은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나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결국은 비대면으로도 거래하는 방법을 만들어낼 것이고 배달 등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바이러스가 계속 변종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인류가 이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바이러스와 장기간 공존해야 하는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세계 전체가 어느 정도 안전해지거나 큰 문제가 없다는 수준이 되기 전까지는 회복이 안 될 수 있다”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다만 어려울 때일수록 위기를 기회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과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금융시장이 발전했듯이 코로나19를 통해 영세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제안이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2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아 경제규모에 비해 과다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회장은 “영세자영업자 같은 경우 상당한 문제였지만 인위적으로 없앨 수 없던 것이 최근 많이 사라지고 있다”며 “이러한 자영업자들을 복지정책으로 어렵지 않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되 다시 치킨집을 차리지 않고 국가경제로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섭섭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번 기회에 기술력이나 생산성 없는 자영업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은 자영업자는 기업을 통해 흡수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회장은 “자영업자는 문을 닫으면 끝이지만 기업은 위기가 오더라도 바로 어려워지지 않기 때문에 기업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리=조지원기자 사진=이호재기자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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