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수익을 창출하는 주요한 방식 중 하나로 유사한 업체를 인수합병(M&A)해 기존 사업을 확장하는 볼트온(Bolt-on) 전략이 있다. 사모펀드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이제는 다수의 사모펀드가 이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운용사들의 실력 격차가 바로 인수 후 통합(PMI) 역량에서 벌어지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볼트온 전략으로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운용사가 있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서 독립한 PEF 운용사 어펄마캐피털이 그 주인공이다. 험지로 여겨졌던 폐기물 시장에서 환경관리주식회사인 EMC홀딩스를 1위 사업자로 키워냈고, 투자 원금 대비 약 18배라는 기록적인 투자수익률배수(MOIC)로 투자금 회수를 마무리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M&A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매각을 성공적으로 이끈 김태엽 어펄마캐피털 대표는 1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폐기물 업체는 인수 당시 모두가 말렸던 사업이었지만 사모펀드가 시장에 뛰어들어 산업 구조가 재편되면서 시장 규모가 확대했고 고용 창출 효과도 나타난 긍정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SC그룹에서 스핀오프 한 지 만 1년에 조 단위 거래를 성사시켜 함께 독립한 6개국의 프라이빗에쿼티(PE)팀 사이에서도 한국 팀의 성과는 회자 됐다.
과거 국내 폐기물 시장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지역 내 전문 영세 기업가 전담하는 협소한 산업이었다. 무엇보다 사업주와 주민, 시민단체 간 유착관계가 만연했는데 이런 업계의 관행을 깨부수기 어려워 국내 대기업도 터부시한 영역이다. 김 대표는 “대형화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은 뼈를 깎는 고통 그 자체”라며 인수 초기 부담감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 EMC 매각 과정에서 인수에 관심을 가졌던 해외 투자자들은 음지에 있던 한국의 폐기물 산업이 양성화된 점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EMC홀딩스는 시장에 매물로 내놓기 아까웠던 회사였다. 2~3년 내에 해외에 지사를 세우는 방안 등 중장기적 성장 전략이 남아 있었지만, 분사 후 첫 블라인드펀드 결성을 고려해 이른 투자회수를 결정했다. EMC의 성공 경험를 바탕으로 어펄마캐피탈은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 이머징 마켓에서 관련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국내총생산(GDP)에 따른 산업별 성장 모멘텀이 다르다는 점에서 착안한 투자 방식이다. 김 대표는 “선진국과의 거래배수(멀티플)를 비교하면 한국 시장의 평가 가치(밸류에이션)는 높지 않다”며 “소득 성장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멀티플을 보이는 시장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어펄마캐피털은 외식업체 매드포갈릭과 김 가공 및 유통업체 성경식품에 이어 육류 가공·유통업체 선우엠티에 투자했다. 식음료(F&B)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는 이유 역시 소득 성장에 따른 수혜를 볼 수 있는 사업군이라는 판단에서다. 김 대표는 “단일 브랜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식음료 사업을 볼트온 해 ’일통(一統)‘할 수 있는 업체를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육가공 유통의 경우 육류담보대출(미트론) 사기 사건의 여파로 전문가들이 기피 하는 투자처다. 반면 김 대표는 국민 소득 성장과 비례해 단백질 소비량이 증가한다는 선진국의 데이터에 기반해 국내 시장에 뛰어들었다. 어펄마캐피털과 손잡은 선우엠티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거래처 중심의 B2B 거래 구조를 B2C 구조로 확장하며 정육점 프랜차이즈 ‘앵거스박 쇠고기상점‘을 론칭 했다. 올 4월에 양념육 제조 전문회사인 이동갈비와 HMR(가정간편식) 생산공장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우고 있다. 중장기적으론 육가공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해외 채널을 확보할 예정이다.
5년 전만 해도 다른 글로벌 PEF에 비해 업력과 인지도가 낮아 약체로 평가받았던 어펄마캐피털은 이륙에 성공하며 고공비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분사 후 처음 조성되는 1호 블라인드펀드는 오는 10월 1차 클로징을 앞두고 있다. 내년 초 펀드 결성을 마무리하면 아시아 지역에 투자하는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 규모 미국 달러 7호 펀드 조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조윤희·김상훈 기자 choy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