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는 수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최근 주식시장의 호황을 이끄는 기업들 면면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트렌드’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된다. 기업이 공개 행사를 통해 획기적인 아이디어 및 수행 계획을 과시하는 것도 이제는 특정 브랜드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이디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아이디어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나라 부정경쟁방지법은 2018년 개정을 통해 아이디어 탈취금지 규정을 추가했다. 이는 거래교섭 또는 거래 과정에서 제공된 기술적·영업상 아이디어가 담긴 정보를 제공 목적에 위반해 부정하게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사용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개정 규정은 기존의 기업 정보 보호 제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디어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 보호 범위가 불분명하고, 따라서 그 범위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 특정 기업에 과도한 독점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최근 아이디어 탈취금지 규정 관련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인지는 구체적·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되, 그 정보의 사용을 통해 경쟁상 이익을 얻을 수 있거나 그 정보의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필요한 경우인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또 거래교섭이나 거래 과정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 정보의 제공이 이루어진 동기·경위, 아이디어 정보의 제공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아이디어 정보 제공에 대한 정당한 대가의 지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그 아이디어 정보 사용행위가 아이디어 정보 제공자와의 신뢰관계를 위반한 경우라면 부정한 사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대법원 2020다220607 판결).
해당 판결은 광고대행사인 원고가 광고용역 계약에 따라 브랜드 네이밍, 광고 콘티 등을 제작해 고객사에 납품했는데, 고객사는 용역 계약이 끝나기를 기다려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채 브랜드 네이밍과 광고 콘티를 다른 광고 대행사에 제공해 광고를 제작하도록 한 사례에 대한 것이다. 원고는 저작권·영업비밀 침해,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물 무단사용행위 등을 주장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그 후 2심 법원은 피고가 부정경쟁방지법상 금지되는 아이디어 탈취, 성과물 무단사용행위를 한 것으로 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2심 법원의 판결을 지지하면서 아이디어 탈취금지 규정에 관한 원칙적인 법리를 제시했다. 아이디어도 법의 보호 대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기는 쉽고 따라서 늘 침해 가능성이 있다. 잠재적인 침해자 입장에서도 위법 인식 없이 부정경쟁행위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자신의 소중한 아이디어는 정당하게 보호받고, 타인의 아이디어를 무심결에 잘못 사용하는 일이 없는 점검의 기회나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