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는 잘못된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신장섭(사진)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1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의 양극화는 재벌이 아닌 정부 정책 때문에 심해졌다”며 이 같이 비판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 출신인 신 교수는 지난 1999년부터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는 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신 교수는 2년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바람에 대해 “경제 민주화의 기본 논리는 재벌 독점력이 강화돼서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것인데 한국의 양극화는 재벌 때문에 심해지지 않았다”며 “1990년대 초반 한국은 재벌의 융성기 였는데 당시 분배지수가 오히려 개선됐다”고 밝혔다. 이어 “1997년 IMF 외환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당시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벌 개혁을 했지만 그 이후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며 “재벌개혁이 안된것이 아니라 회사의 단기 이익을 우선시 하는 주주지향적인 개혁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 또한 IMF 외환위기 이후 촉발된 것이라며 “결국 IMF의 구조조정 때문에 지금의 양극화 문제등이 생겼는 데 관련 책임을 재벌에게 돌리는 것은 문제”라며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양극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데 재벌에 대한 정부 및 금융기관의 장악력만 높이는 것은 전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여당은 물론 최근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까지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등 이른바 ‘기업규제 3법’ 지지에 나선 것과 관련해서는 “기업규제 3법은 일단 말이 안되는 법안이라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교수는 “기업규제 3법은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이 중 상법개정안에서 감사위원 1명을 분리선임할 때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경우 합산지분율과 상관없이 의결권을 최대 3%까지로 제한했는데 이 것은 헌법위반 사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상법개정안에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려는 것과 관련해서는 “이것이야 말로 주주독재”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신 교수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나서는 등 좌우 상관없이 기업을 압박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기업은 매출이나 이익이 성장하면서 고용을 늘리고 임금을 올리게 돼 있는데 사회적 가치를 늘리라며 무작정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권 등은 실질적 양극화 해결책은 내놓지 않고 잘못된 처방을 내놓고 있다”며 “재벌은 무조건 개혁대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나, 재벌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한 이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지금과 같은 상황(경제민주화)이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경제 민주화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민주화라는 거창한 이름만 붙였지 재벌을 손에 넣기 위한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볼 수 있으며 결국 재벌을 통제하기 위한 레토릭(수사학)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의 최근 기업규제3법 찬성 기류와 관련해서는 “한국에서 우파정당이라고 하는 이들이 본인들이 어떤 포지션에 있는지 생각을 하지 않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한다”며 “그 진의가 궁금하며 어떻게 보면 한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정부가 분배에 신경쓰지 말고 우선 성장에 보다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성장 과정을 보면 성장률이 높았을때 분배가 개선됐으며 성장률이 떨어지면 분배가 나빠졌다”며 “돈많은 사람은 경제가 나빠져도 가용자본을 활용해 돈을 벌 수 있지만 가난한 이들은 임금 상승이 정체되거나 해고될 가능성이 높아 분배가 더욱 안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양극화 문제가 돈을 많이 버는 자산가들에 대한 질투심이나 시기심 등으로 본질이 호도되고 있는데 성장을 해야 분배의 여지가 생기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신 교수는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가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도 소득주도성장 등을 추진하며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렸지만 결국 고용은 안늘어나고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줄었다”며 “그나마 늘어난 일자리는 정부재정으로 만든 일자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재정투입 일자리는 결국 두고두고 후대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며 재정 의존도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각종 정책 등으로 기업이 일자리를 못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업 탓을 계속 해서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최근 저술한 ‘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언급하며 결국 기업이 살아야 국가경제가 살아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 경영을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추구하는 지를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며 “전문경영인만 보더라도 결국 법인과의 계약을 통해 기업의 생존과 이익 추구를 가장 우선시 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가치 추구나 주주가치 제고 등은 당연히 2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은 이미 존재하는 것 만으로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내는 등 수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며 “정부 주도형 일자리는 사람들의 자아실현이라는 기본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으며 결국 기업을 살리는 것이 최고의 복지”라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보다 확실한 규제 개혁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며 “현재 정부는 기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업에 불합리한 것을 강요하고 있다”며 “기업이 이익추구를 하면서 만들어 내는 사회적 가치에 대해 보다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종=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