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을 다음주 여성으로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차기 대법관은 대선 이후 지명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어 대선을 6주 앞둔 미 정치권의 새로운 불씨가 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엣빌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다음주에 (대법관) 후보를 지명할 것”이라며 “여성이 될 것이다. 아주 재능 있고 훌륭한 여성”이라고 전했다.
백악관 안팎에서는 보수 성향인 에이미 코니 배럿 제7연방고등법원 판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제11연방고법의 쿠바계 여성 바버라 라고아 판사도 후보군에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배럿 판사는 매우 존경받고 있으며 라고아 판사는 비범한 사람이고 히스패닉”이라고 설명했다.
전날 세상을 뜬 긴즈버그 대법관은 지난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으로 대법관이 됐다. 1981년 대법관이 된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 이은 미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컬럼비아대 로스쿨 수석 졸업에 이어 1972년 여성 최초로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가 됐다. 동성결혼 합법화와 버지니아 군사학교의 여성 입학 불허에 대한 위헌 결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 등 약자를 대변하는 판결을 내려 진보의 아이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5년에는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100명의 영향력 있는 인물에 포함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선거 전 보수 인사를 대법관에 앉히게 되면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있을 때도 보수·진보 성향의 법관 비율이 5대4였기 때문에 이번에 보수 인사가 대법관이 되면 대법원의 정치 성향이 완전히 보수 쪽으로 기울게 된다.
특히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총 득표수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전 부통령에게 54만표 뒤졌음에도 대법원까지 가는 재검표 공방 끝에 플로리다주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백악관에 입성했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요하다. 이번 선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우편투표가 급증해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의 보수화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차기 대법관은 대선 이후 새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11월 선거 유세 때문에 다음달에는 상원이 열리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 변수다. 이탈표도 문제다. 공화당의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메인주)이 공식적으로 대선 후 선출되는 대통령이 차기 대법관을 임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원은 가부동수일 경우 부통령이 표결에 나설 수 있어 공화당은 이탈표가 3명까지 가능하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