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서 체온을 측정할 필요도, 출입자 명부에 이름을 적을 필요도 없다. 애당초 교통체증과 주차난을 염려할 필요도 없었으며, 밤이건 새벽이건 심지어 어디서든지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와 참가자 안전을 위해 사상 처음 온라인 개최로 전환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Art Seoul·이하 키아프)의 온라인 뷰잉 룸이다.
키아프는 한국화랑협회가 지난 2002년 처음 개최한 이래로 국내 최대 규모·최고 수준의 아트페어로 자리 잡은 군집 미술품 견본시장이다. 지난 해에는 5일간의 공식 행사 동안 8만 2,000명이 방문해 310억 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올해는 25일 개막식을 앞두고 행사를 준비하던 제19회 키아프가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지난 7일 오프라인 현장 개최 취소와 ‘온라인 뷰잉룸’을 운영을 전격 발표했다. 11개국 139개 화랑이 4,0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사상 처음 ‘온라인’ 체제로 전환한 키아프는 지난 16일 VIP 대상으로 먼저 문을 열었다. 기존 아트페어가 공식 개막 직전에 우수 고객층과 미술계 주요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VIP오픈’을 운영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올해 처음 키아프에 참가한 독일 화랑 스프루스마거스 갤러리가 개막 첫 날 소속 작가 조지 콘도의 ‘마스크를 쓴 두 얼굴(Two Figures With Face Masks)’을 판매했다. 주최 측인 한국화랑협회 쪽에서 파악한 작품가는 15억~17억원. 미국의 개념미술가 바버라 크루거의 작품도 여러 점 팔렸다. 20일 현재 이 화랑의 온라인 뷰잉룸에는 제니홀저·스털링루비·게리흄 등의 작품이 ‘새로 걸렸다’.
외국 화랑이면서 서울 분관을 둔 페이스갤러리는 대표작가인 이우환·코헤이 나와·피터 알렉산더 등의 작품 판매를 성사시켰다. 현재 뷰잉룸에 선보인 샘 길리안, 알리샤 콰다 등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아트사이드갤러리가 내놓은 기욤티오의 작품 중 5점에 이미 ‘솔드(SOLD)’ 딱지가 붙었다. 선화랑이 판매한 정영주의 작품 구입자는 방탄소년단(BTS)의 RM인 것으로 알려졌다.
갤러리현대는 이건용·김민정·최민화 등 한국미술 거장들의 신작을 앞세웠고 김창열의 ‘물방울’을 비롯해 이승택·정상화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박영덕화랑은 백남준 설치작품, 박서보의 모노타입 판화 등 희소성 높은 작품을 내놓았다. 가나아트는 시오타 치하루·에단 쿡 등 해외작가부터 전광영·허명욱 등 국내작가까지 아우른다. 국제갤러리에는 유영국·하종현·양혜규·문성식 등에 대한 문의가 많다. 온라인 상에서 메시지로 작품에 대한 추가 질문이 가능하다.
부산에 본점을 둔 조현갤러리의 뷰잉룸에서는 이광호의 출품작 2점이 모두 팔렸고, ‘숯의 화가’ 이배의 한 작품을 두고 4~5명의 고객이 문의를 이어갔다. 조현갤러리 측 관계자는 “기존 고객들의 작품 문의도 있었지만 신규 컬렉터의 문의가 활발했고, 이미 팔린 작품에 대해 화랑 쪽으로 메시지 문의가 오는 등 기대 이상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아트페어’의 취지가 여러 갤러리의 대표작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인데, 처음 온라인으로 진행된 키아프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고 발품 팔지 않고도 가격 비교와 판매 여부 확인이 손쉽다는 점 등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처음 방문한 초보 컬렉터가 쭈뼛거리며 작품값을 물어보지 않아도 되기에 신규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아무리 ‘랜선관람’과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됐다지만 수천만, 수억원을 호가하는 미술품을 클릭 만으로 구매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잘 알려진 작가의, 익히 아는 작품이 아닌 한 구매 고객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에 키아프는 ‘온사이트(on-site)’를 별도로 마련해 희망 화랑에 한해 각자의 갤러리에서 출품작 전시를 연계하게 했다. 또한 미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미술주간’과 공동으로 ‘밀레니얼 아트 트렌드세터: 나의 안목이 세상을 바꾸다’를 준비해 젊은 미술애호가들을 끌어모으는 등 다각도로 상생방안을 모색 중이다. 키아프 ‘온라인뷰잉룸’은 22일까지 VIP프리뷰에 이어, 23일 공식 개막해 다음 달 18일까지 평소보다 길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