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묵자”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KBS2 개그콘서트 한 코너에서 쓰였던 유행어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개그맨은 아내와 아들이 한창 신나서 대화를 이어갈 때 난데없는 성질을 부리며 이 외침과 함께 대화를 정리했다. 이 낮은 읊조림은 겉으론 ‘식사 합시다’란 권유의 옷을 입고 있지만 ‘더 이상 듣기 싫다’ 혹은 ‘그 입 다물라’라는 명령에 다름 아니다.
코미디의 본질은 그저 웃기기가 아닌 현실고발과 사회병폐의 풍자라고 했던가. 이 개그코너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마치 우리 가족 내부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밥벌이 책무에 오롯이 매달려야 했던 부모세대는 자식에게 무관심했고 자녀세대는 자신들의 세계에만 집중했다. 그 사이 부모와 자식 간 거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4050 세대를 주 타깃으로 삼고 있는 라이프점프가 세대격차 해소를 위해 유튜브 프로젝트를 준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 ‘엄빠의 품격은’은 2030 세대의 세계관 혹은 삶의 철학을 엿봄으로써 자녀와의 거리설정에 애를 먹고 있는 부모세대에게 작은 힌트를 주고자 기획됐다. ‘엄빠의 품격’ 기획자 조민지씨를 만나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엄빠의 품격’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기획의도는 무엇인가.
“2030 세대와 4050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컨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수 있으려면 최소한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볼 기회가 필요하다고 믿는데, 그런 기회가 적다고 느꼈다.
이 채널이 나의 자녀에 대해서 알아가고자 하는 작은 호기심부터, 직장에서 새롭게 수혈되는 어린 세대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리더의 관심사까지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서 ‘라이프점프’를 구독하는 4050 세대가 2030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의 트렌드와 문화를 저격해 부자가 되는 밑거름까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본인의 경우 엄마, 아빠와 세대격차를 느끼나. 느낀다면 실생활에서 어떤 부분에서 특히 실감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음.. 우리 가족은 대화가 많은 편에 속해서 그런지, 부모님과 세대격차를 느껴본 적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나도 신기했던 게, 사회생활을 할 때는 종종 ‘이게 세대차이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지만, 가족과는 그런 게 없더라. 곰곰이 돌이켜보면,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꾸준히 대화하면서 서로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맞춰오지 않았나 싶다. ‘차이’라는 걸 느끼기 전에 서로 맞춰온 것 같달까... 아무리 약속이 많아도 일주일에 3-4번은 저녁을 같이하는데다가, 이 저녁식사시간도 대화로 점철돼 있어서 2~3시간 정도 식사하다보니 서로에게 스며든 것 같다.
-통상적으로 딸 입장에서는 엄마가 아빠보다는 세대이해도가 높다고 생각되는데 실제는 어떤가.
그 부분은 이미 질문에서도 어느정도 전제돼 있는 것 같은데... 세대 간의 차이에서 기인한 이해도 차이라기보다는 가족 내 권력구조, 가족 내 남녀 간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공감력에서 비롯된 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이었던 나라다보니, 아무리 요즘 시대가 변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그런 부분이 상당 부분 남아 있잖으니까. 직접 그 과정을 겪은 엄마가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딸을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엄빠의 품격’에 등장한 인물들은 몇 명이나 되나. 그들 역시 부모세대와의 세대격차를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지.
“현재 시즌 1에 등장한 인물은 12명정도다. 하지만 이 인물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특정 개인의 이야기로 치중되지 않기 위해, ‘엄빠의 품격’에 등장할 2030,4050 세대는 계속해서 다양하게 구성해나갈 생각이다.
시즌 1에서는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부모님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무엇인지 등을 주로 알아봤다. 부모님의 세대를 바라보는 자녀세대의 시선과 자녀들 세대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데 집중했다.
그래서 세대격차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했지만, 자라온 환경과 부모님의 모습이 자녀에게 정말 큰 역할을 준다는 걸 크게 느끼게 됐다.“
-부모님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식과의 세대격차를 메우고 싶어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엄마, 아빠와 구분해서 설명해줄 수 있을까.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대화다. ‘티키타카’가 오고가는 살아있는 대화를 하시길 추천한다. 일회성에 그친 대화이거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대화는 표면적인 대화일 뿐이다.
하지만 이미 이런 대화를 시도해볼 수 없을 정도로, 손써버릴 수 없는 상황의 세대격차라면, 음... 현재로써 가장 좋은 방법은 앞으로 ‘엄빠의 품격’을 꾸준히 시청하는 방법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추천해드리고 싶다. (하하) 이 채널을 통해, 자녀세대의 일반적인 생각을 먼저 알고 대화에 임하셨으면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마인드로 말이다!“
차선책으로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면 이해와 동의라는 단어를 구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해와 동의를 세트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이해했다고 해서 동의까지 강요하게 된다면 분명히 갈등이 발생한다.
부모님께서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에 대해서 난 이해를 구하고 설명을 해드릴 수 있지만 동시에 동의까지 구하려 하면 세대갈등이 찾아온다. 난 이해를 시켜드리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시고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선택하는 것은 부모님의 영역이니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대 간의 충분한 이해를 위한 노력이 있다면 서로의 생각에 대해 동의해주는 경우가 늘어나지 않을까.
-당신의 세대가 생각하는 연애관, 결혼관을 요약해서 설명해달라.
“연!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고 말씀하셨죠. 애! 애가 생기면 결국 사랑보다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고. 관! 관심 없어요. 아직은 사랑이 먼저인걸요.
아직 내가 결혼을 생각할 나이는 아니라서 명확한 결혼관은 없지만 연애관만큼은 내 것이 있어서 3행시를 지어봤다.“
-당신의 세대가 생각하는 경제관념을 설명해달라.
“우리 세대의 경제관과 부모님 세대의 경제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저축’이라고 생각한다.
저축이 미덕으로 장려되던 시기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저축을 하면 낮은 이자율은 물가상승률 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시기가 왔다.
그래서 지금은 ‘성실하게 저축’ 한다는 관념에서 ‘성실하게 재테크’ 하는 시기가 온 게 아닐까. 20대조차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빚을 내서 집을 사는 지금 2030의 경제관은 ‘남보다 앞서가고 싶은 열망’보다 ‘남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엔 앵글을 바꿔서. 당신의 세대를 남녀 구분해서 그 특징을 설명한다면?
“갈수록 남녀가 구분된 큰 특징은 사라져가는 것 같다. 기본적인 생물학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생물학적 이외의 사회적 차이는 줄여가기 위한 여러 사회적 차원의 움직임이 이미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지만 더 나중 세대들은 더욱 더 차이점이 없어질거라고 생각한다. 개인간의 다름이 존재하긴 하겠지만 남녀의 특징은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당신의 세대가 바라보는 부모님 세대의 특징을 설명한다면?
“내가 생각할 때 부모님 세대의 특징은 ‘성실’ 같다. 너무나 성실하게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을 볼 때마다 죄송함과 고마움이 항상 공존한다. 우리 세대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성실하게 살아오신 것 같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부모님을 게으르게 사실 수 있도록 만드는게 나의 목표다.“
-시즌 1의 남은 콘텐츠는 어떤 부분에 집중할 계획인지.
“4050세대를 초대해서 2030세대 인터뷰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들어볼 예정이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무엇인지, 왜 그런 모습으로 비춰줬을지 부모세대의 입장을 들어보면서 세대 간의 달랐던 입장차이를 함께 엿보길 희망한다.”
-시즌 1 종료 후 시즌 2는 어떤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는지.
“시즌1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정도의 시간이었다면, 시즌2에서는 서로의 생각차이를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볼 예정이다. 계획에 변경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로썬 세대 간 생각차이를 정확히 엿볼 수 있는 구체적인 주제를 잡아 이야기를 듣는 방향으로 기획하고 있다.
꾸준하게 4050세대들을 중심으로 한 컨텐츠를 만들어 가가겠다. 2030 세대들이 주요 타켓인 유튜브 컨텐츠 홍수 속에서 4050세대의 노아의 방주가 되겠다!“
-끝으로 라이프점프 독자층은 4050 중장년이 대상이다. 이들에게 ‘엄빠의 품격’ 기획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기특한 심정으로 나의 인터뷰를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4050 세대가 2030 세대를 이해하고 2030 세대도 4050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엄빠의 품격’을 열심히 만들어가고 있으니 채널에 많은 관심 부탁 드린다.
또한 현재의 2030 세대는 미래의 4050 세대가 되는 만큼 미리미리 라이프점프의 좋은 컨텐츠를 공부할 수 있도록 공유해달라. (하하)“
/박해욱 기자 spooky@lifejum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