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치첸이트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추분 때 멕시코 유카탄반도 마야 문명의 중심지인 치첸이트사에는 놀라운 현상이 생긴다. 해가 지면서 피라미드 신전 ‘엘 카스티요’의 꼭대기 모서리에서 만들어지는 거대한 뱀 모양의 그림자가 건물을 따라 내려가 계단 아래 뱀 머리 조각에 연결된다. 마야인들은 이 시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수확했다. 피라미드의 돌계단은 4개 면과 맨 위 제단을 합치면 365개로 태양력 1년 일수와 같다. 치첸이트사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간 이유들이다.


치첸이트사는 1세기 과테말라 일대에서 살다 5세기 무렵 이주해온 마야 부족인 이트사족이 건설했다. 치첸이트사는 ‘이트사의 집 입구’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트사족은 7세기쯤 이곳을 떠났다가 10세기에 다시 돌아온다. 이후 멕시코 북부 고원 지역의 톨텍족이 이곳을 점령해 함께 문명을 발전시켰다. 치첸이트사의 큰 유적들은 대부분 이 당시에 건설됐다. 이들은 세계에서 0의 개념을 가장 먼저 사용했고 20진법이라는 독자 셈법을 활용했을 정도로 수학과 천문학에 뛰어났다. 이는 종교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한다. 마야인들은 ‘쿠쿨칸’이라는 뱀신을 왕의 신으로 숭배했다. ‘엘 카스티요’도 이 뱀신을 위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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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치첸이트사는 13세기 중반 알 수 없는 이유로 폐허로 변했고 3세기 후인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배우 멜 깁슨은 마야 문명의 몰락을 그린 ‘아포칼립토’의 메가폰을 잡았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최고의 예술 영화”라고 극찬했다. 멕시코는 나라 전체가 수수께끼 유물들로 가득 찬 박물관이다. 중북부 고원 지역에는 14~16세기에 걸친 아스테카문명의 유적이 즐비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탓에 문을 닫았던 치첸이트사가 6개월 만에 22일 다시 문을 열었다. 당분간 일일 방문객을 3,000명으로 제한하고 마스크 착용과 발열 검사도 한다고 한다. 백신과 치료제가 하루빨리 개발돼 더 많은 이들이 사라진 고대 문명에서 교훈을 얻는 시간을 편안하게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오현환 논설위원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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