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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후 北에 사살 될 때까지...청와대는 '골든타임' 살릴 기회 없었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서주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연평도 실종 공무원 피격 사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서주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연평도 실종 공무원 피격 사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해양수산부 공무원 A(47)씨가 서해 소연평도 인근 어업지도선에서 실종되고, 북한이 A씨를 사살한 뒤 기름을 부어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른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총 3차례에 걸쳐 보고됐다고 청와대가 24일 밝혔다.


청와대는 이날 문 대통령이 사건을 최초 인지한 시점부터 정부에 ‘공개하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의 시간대를 소상히 공개했다. 하지만 ‘과연 A씨를 살리기 위해 청와대는 적극적으로 대응했느냐’를 놓고 논란은 거세지고 있다. 지난 6월 북한이 남북 핫라인을 모두 차단한 여파로 청와대는 이 사건과 관련해 북한 측과의 접촉 조차 시도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23일 A씨가 북한 측에 의해 피격되고 시신이 불태워진 첩보를 보고 받은 이후에도 당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보직 신고식에서 ‘평화’를 강조, 이 역시 ‘적절한 행보였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영호 합참작전본부장이 24일 오전 국방부에서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공무원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안영호 합참작전본부장이 24일 오전 국방부에서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공무원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A씨가 실종된 것은 지난 21일이다. 이 사실이 문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된 것은 다음날인 22일 오후 6시 36분. 보고는 ‘서면 보고’ 형태였으며, 내용은 ‘A씨가 해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해 수색에 들어갔고, 북측이 A씨를 해상에서 발견했다’ 는 것이다.

같은 날인 22일 오후 10시 30분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A씨를 사살 후 시신을 훼손했다는 첩보가 청와대에 전달됐다. 군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11분께 북측이 A씨의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운 정황이 우리 측 감시 장비에 포착됐다.

문 대통령에게 A씨를 북측이 발견했다는 ‘서면 보고’가 이뤄진 이후 청와대에 ‘사살 첩보’가 들어오는 약 4시간 동안 군 당국과 청와대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군 당국은 이와 관련 A씨의 정황을 포착한 ‘첩보 자산’ 노출에 대한 우려를 거론하면서 “북한이 A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불에 태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해명했다.


실종 후 북측에서 발견됐다는 서면 보고 이후 ‘북한과 접촉해 인도적 협조를 요청하라’는 등의 대통령 지시 역시 없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했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서 “지금 핫라인이 단절돼 있다”고 밝혔다. 앞서 북한은 우리의 ‘대북 전단’을 비난하며 지난 6월부터 남북연락사무소 통신선, 군의 동·서해 통신선, 노동당~청와대 직통전화(핫라인)선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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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24일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 의해 사살·화장 사건과 관련, 해당 공무원이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지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4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해상에 정박된 실종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연합뉴스군은 24일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 의해 사살·화장 사건과 관련, 해당 공무원이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사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지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4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해상에 정박된 실종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연합뉴스


청와대는 사살 첩보를 접수 한 후 약 2시간 30분 후인 23일 새벽 1시부터 2시 30분 까지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했다. 군 당국 첩보의 ‘신빙성’을 확인해야 했기에 문 대통령에게 그 즉시 보고되지는 않았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간, 문 대통령이 북한과의 ‘종전선언’을 강조하는 유엔총회 연설이 진행됐다. 긴급관계장관회의가 진행되는 사이인 새벽 1시 26분부터 연설이 시작됐다. 다만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사전 녹화 방식이라 지난 15일 녹화가 됐고 18일 유엔으로 발송됐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유엔 총회 연설 내용과 이번 사건을 결부 짓지는 말아달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원인철 합동참모의장의 보직신고를 받은 후 삼정검(三精劍)에 수치(綬幟)를 달아주고 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원인철 합동참모의장의 보직신고를 받은 후 삼정검(三精劍)에 수치(綬幟)를 달아주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는 긴급관계장관회의 등을 통해 첩보 분석을 마치고 23일 오전 8시 30분부터 안보실장과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첩보 내용을 대면 보고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 ‘사살 첩보’가 입수 된 후 10시간이 지나 이를 보고 받은 셈이다. 문 대통령은 보고 직후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 만약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다. 사실관계를 파악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원인철 합동참모의장 등 군 장성 보직 신고식을 그대로 진행했다. 문 대통령은 보직 신고를 받은 후 “강한 국방력의 목표는, 전쟁의 시기는 당연히 이기는 것이고, 평화의 시기는 평화를 지켜내고 평화를 더 발전시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군 장성을 향한 문 대통령의 격려 발언에서 평소와 다른 긴장감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2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날리고 있다./연합뉴스2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날리고 있다./연합뉴스


정부는 문 대통령의 ‘북에도 확인하라’는 지시에 따라 23일 오후 4시 35분에 유엔사 군사정전위 채널을 통해 북한 측에 통지문을 발송했다. 이에 대한 북측의 화답은 끝내 오지 않았다.

이어 24일 오전 8시 청와대는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국방부로부터 이번 사건과 관련한 분석 결과를 통보 받고 9시에 문 대통령에게 최종 결과를 대면 보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께서는 국가안전보장회(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해서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후 서주석 NSC 사무처장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북한군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저항 의사도 없는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며 “북한 당국은 책임 있는 답변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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