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2019년도 임금 협상이 ‘공회전’하면서 추석까지 타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년 넘게 장기화하는 협상에 직원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것을 고려해 노사는 교섭을 서두르고 있지만, 명백한 불법·폭력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요구하는 노조와 이를 거부하는 사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23일 오후 1시부터 4시간 동안 전 조합원이 참여하는 파업을 실시했다. 사측이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있다며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사의 2019년 임금협상은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해 65차례를 넘겼으며 대표이사가 직접 교섭에 참석한 것만 해도 20번이 넘는다. 2020년 임협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노조가 임금과 관계없는 현안해결을 요구하며 계속된 파업으로 협상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주장하는 현안은 지난해 물적분할 임시주총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행위 해고자 4명의 복직, 불법행위 조합원 1,415명에 대한 징계 철회, 3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 중단 등이다. 사측은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는 없지만 현실성 있는 절충안도 제시하며 노조 집행부에 출구도 열어줬다. 회사 측은 해고자들의 재입사를 염두에 두고 협의를 진행하고 불법파업에 참가해 징계 받은 사람들 대해서도 향후 인사나 성과금 등 급여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사측의 제안에 대해 노조는 “고소·고발을 철회하지 않으면 임금 협상도 없다”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노조는 최근 교섭에서 “(폭행 등 범법행위는) 회사의 계속된 구조조정으로 발생한 문제”라며 “회사가 수개월째 똑같은 내용만을 반복하고 고소고발을 고집하며 교섭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가 강경노선을 고집하면서 내부갈등 양상도 생기고 있다. 현안 문제로 교섭이 지지부진하자 현안과 임금협상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한 조합원은 “성과금 지급이라도 합의했으면 하지만, 입장차가 커 추석까지 타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한편 강성 노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중공업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복수노조를 설립한 현대로보틱스는 지난 22일 2년치 임금협상 잠정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에 다른 계열사들도 ‘실리’ 성향으로 기울고 있는 양상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사들은 기존 ‘4사 1노조’ 체계 때문에 지난해 임금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당초 현대중공업이 4사로 분할된 후 노조가 1개 노조를 유지하면서 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현대로보틱스 조합원 모두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으로 남았다. 임금교섭 정체가 수년째 반복되다 보니 조합원들의 불만이 쌓였고 현대로보틱스는 새 노조를 설립해 복수노조 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현대로보틱스 옛 노조에 남은 5명을 제외한 120여명의 조합원들은 모두 신(新)노조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현대건설기계와 현대일렉트릭도 현대로보틱스에 이어 복수노조를 설립해 현대중공업 노조의 ‘한지붕 네가족’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