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반도24시] 내가 '총살당한 공무원'이라면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국민 지키는 것이 국가 존재 이유

김정은 사과했다고 책임 회피하나

靑·軍 '구조 외면' 진상 설명하고

北에도 재발 방지 약속 받아내야




지난 22일 저녁 대한민국의 한 공무원이 북한군에 사살당한 뒤 소각됐다. 군대는 지켜보기만 했고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도 북한에 연락하거나 군에 지시해 구조하려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유엔 연설과 아카펠라 공연 관람도 예정대로 진행됐다. 국민들이 격분하자 청와대는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김정은의 뜻이 포함된 북한 통일전선부 통지문을 낭독해 상황을 수습하려 한다. 일부 여당인사들은 김정은의 사과를 수용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까지 기대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통지문 한 장으로 국민의 피살 문제를 덮으려는 것 같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가 책임마저 회피하려는가.

토머스 모어는 저서 ‘유토피아’를 통해 인류의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데, 일반인의 인식과 달리 국방을 가장 강조한다. 모든 도시는 성벽과 해자로 방어되고 개병제로 남녀 모두 군사훈련을 받으며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무자비하게 적을 무찌를 것을 요구한다. 외국이 국민 중 한 명을 부당하게 살해하면 바로 선전포고 후 전쟁을 감행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근본 이유는 국민의 보호다. 이러한 사상은 서양 국가들에 계승돼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군에게 발견돼 총살당하기까지 6시간 동안 지켜보기만 했다. 밤중에 안보관계장관회의를 했지만 대통령을 깨우지 않았고 어떤 대북 대응 조치도 논의한 것 같지 않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통지문을 보냈는지, 우리 정부가 요구했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없다. 그러면서 이제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고 북한이 사과했으니 넘어가자고 말한다. 이게 올바른 정부의 모습인가.


영국의 계관시인 존 던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 인류는 각각이 섬이 아니라 모두 대륙의 한 부분이고 ‘조종(弔鐘)’은 결국 우리 모두의 죽음을 경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차가운 바다에서 하루 넘게 표류하다 북한군에게 발견됐으나 물이나 음식을 제공받기는커녕 총살당한 그 공무원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해보라. 정열을 바쳐 헌신했던 국가가 구조해주기는커녕 나를 죽인 자에 대해 분개하거나 책임도 묻지 않는다면 너무 원통하지 않겠는가.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은 공동 방위이고 이것은 구성원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함으로써 비롯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소위 ‘최고 존엄’인 김정은이 사과한 것에 ‘감읍’한 채 넘어가고자 한다. 정말, 이게 나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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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요구한다. 첫째, 북한에 확실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라. 우리 공무원에게 물 한 모금이라도 권했는지, 그가 월북 의사를 표명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적대적 행동을 했다는 것인지, 시체는 왜 인양하지 않았는지, 총살 지시는 누가 내렸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 둘째, 진상이 규명되면 책임 소재를 가려 엄벌을 요구해야 한다. 총살과 소각 명령을 내린 자는 처벌돼야 하고 북한의 잘못이 있으면 보상도 요구해야 한다. 셋째, 북한에 재발 방지를 약속받아야 한다. 앞으로 표류하는 남한 국민을 발견할 경우 구조, 통보, 보호, 송환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사람을 죽이고 나서 미안하다면 끝나는가.

정부는 자체 감사를 통해 총살당하기 전 6시간 동안 군은 왜 구조조치를 강구하지 않았는지, 그동안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는 어떤 보고를 받았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사과의 통지문을 받을 수 있었는데 왜 우리 공무원에 대한 구조와 송환을 북한에 요구하지 않았는지를 국민들에게 보고하고, 문제가 있으면 시정하고 범법자는 처벌해야 한다. 통지문의 입수 경위에 대한 조사와 발표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은 남북한의 평화 공존을 바란다. 다만 그 희망이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 국민이 총살당한 것을 묵인할 수는 없다. 굴종의 한시적 평화가 아니라 당당한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의 반성과 설명, 교정을 강력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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