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경, 한현호 이 두 사람과는 피아노 트리오 이제 그만 하죠. 준영씨한테 득 될게 없는 조합입니다. 뭐 다이렉트로 말씀드리자면 준영 씨와 급이 안 맞습니다.(박성재)
야 너도 너 만난다는 여자애나 뭐 다른 누구와도 반주해주네 뭐 그런 생각 하지도 마. 급 떨어지는 애들 반주 해줘봤자 너도 같이 급 떨어지는 것밖에 안돼.(유태진)
이만큼 살아보니까 동기든 친구든 균형이 맞아야 서로 편해. 한사람이 유독 잘 나가든지 처지면 못난 마음이 생기거든. 학생일 때야 다 그렇고 그렇지만 사회 나와봐. 하나는 재단 이사장, 하난 잘 나가는 연주자. 그럼 하난 교수쯤 해줘야 균형이 맞지.(나문숙)
월드클래스 아티스트랑 학교 오케스트라 끝자리에 앉는 사람은 아무래도 급이 안 맞을까요?(채송아)
대한민국에서는 사람을 볼 때 사람을 보지 않는다. 이름 앞에 꼭 뭐가 줄줄이 붙는다. 학생이면 등수, 취준생에게는 학벌, 직장인에게는 회사, 소개팅 자리에선 전부 다에 집과 차 외모까지….
모두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꿈이 뭐냐” 물으면 직업이 나오는 세상, 등수에 따라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는 세상이다. 고작 20살에 경쟁의 절반이 끝나버리는 사회에서 사람이 좋아 하는 사랑은 이뤄지기 힘들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세상은 더더욱 적나라하다. 인맥으로 권력을 만들어 살아가는 송정희 교수(길해연), 조교로 써먹으려고 꼴찌 채송아에게 대학원 입학을 제안하는 이수경 교수(백지원), 박준영의 지도교수로 또한번 입지를 굳히려는 유태진 교수(주석태). 여기에 삼각관계 친구들에게 경쟁을 붙여버리는 나문숙 이사장(예수정)까지. 모두가 사람 앞뒤에 ‘급’을 붙인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익숙해져버린 청춘은 고민한다. 내 급은 어느정도인지, 나는 그와 사랑을 할 수 없는지. 공부를 할 만큼 해도 돈이 없고, 최고의 연주자가 됐음에도 지옥같은 콩쿨에 또 나가야 한다. 즐거워 시작한 음악은 오케스트라 맨 뒷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일이 되고 경쟁이 된다. 그리고 사랑은 모든 과속방지턱 앞에서 멈춰선다. 부드럽게 넘어가지 못하고.
다가간다는 것은 참 어렵다. 불필요하지만 세간의 눈을 살펴야 한다. 습관이라는게, 학습이라는게 참 무섭다. 보이지 않고, 듣는 사람마다 다른 음악에도 점수를 매기는 사람들에게는 순수하게 다가가는 것조차 ‘그 뒤에 노림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박준영(김민재)은 안다. 자신도 채송아(박은빈)를 좋아한다는 것을. 천재적 재능에도 집안사정으로 인해, 자신을 향한 지원에 보답하기 위해 ‘모두에게 8점을 받는’ 연주를 해야 했던 그의 삶은 성격으로 굳어버렸다.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그는 사랑조차 주변 모든 사람이 상처받지 않도록 참고 견디고 정리한 끝에서야 고백한다.
준영이 정경(박지현)의 교수 면접 연주회에 반주를 해준다는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충분한 배려이자 미련을 끊어낼 수 있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결정을 내리자마자 송아에게로 달려가 그 이야기를 했다. 그에게 문제는 급이 아니라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사람이 등급으로 평가받는 요즘 세상에서 이들의 순박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SF보다 신비로운 판타지다. 이게 가능할까 싶은데 울고 웃고 가슴졸이며 응원하게 되는….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월드클래스 아티스트가 음대생을 왜 만나냐고? 야 너 지금 선 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