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런 특수한 관계의 사람들이 모여 가족이 된 경우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담보’가 궁금하기도 하고 흥미로웠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잖아요.”
2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지원이 5년 만에 국내 스크린 복귀작으로 영화 ‘담보’를 선택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29일 개봉을 앞둔 영화 ‘담보’는 인정사정 없는 사채업자 두석(성동일 분)과 그의 후배 종배(김희원)가 떼인 돈을 받으러 갔다가 얼떨결에 9살 승이(박소이)를 담보로 맡아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원은 ‘담보’에서 두석(성동일)과 종배(김희원)의 진심 어린 사랑과 헌신으로 잘 자란 어른 승이를 연기, 노련한 감정 연기로 극의 깊이를 더했다. 배우 성동일, 김희원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특별한 가족애를 선보이고, 아역 박소이와는 2인 1역을 연기해 ‘케미스트리’를 자랑한다.
‘담보’는 하지원이 한·중·일 합작 영화 ‘맨헌트’(오우삼 감독) 이후 2년 만에 스크린 컴백으로 화제를 모았다. 오랜만에 영화를 통해 관객을 만나는 그는 “떨린다”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영화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주인공 세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국 가족이 되어간다. 이 과정 속에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하지원은 자신이 맡은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감정신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감정신이 많이 부담이 됐죠. 촬영할 때 쉽지 않았어요. 제가 매일 촬영장에 가서 이어오는 감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밸런스를 맞추는 게 힘들었어요. 감정이 더 극한 상황에 달했을 때는 오히려 머릿속을 백지상태로 만들고 촬영에 들어가요.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는, 되게 힘든 과정이긴 한데 그래야지만 자연스러운 감정이 나올 수 있거든요. 나에게 최면을 거는 듯이 백지상태로 만들어요. 슬픈 감정신인데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고 촬영에 들어가는 거죠. 제가 접근하는 방식이 그래요.”
복잡다단한 감정신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촬영 현장은 하지원에게 ‘힐링 그 자체’였다.
“현장도 영화의 일부라 생각해요. 촬영하는 장면들은 힘들었지만, 현장의 공기는 힐링이었어요. 바람 부는 야외에 앉아서 모니터링하고,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하고. 그 공기가 너무 편안하고 힐링 됐어요. 현장에서 촬영 말고 밖에서도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기다리는 순간까지도 영화의 일부분이라 생각해서 많이 즐기는 편이죠.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엔 너무 좋은 선배님들이랑 함께 해서 제가 배우는 것도 많았고, 남다른 힐링이었죠.”
영화는 어린 승이, 고등학생 승이, 성인이 된 승이로 3명의 배우가 한 역할을 연기한다. 하지원은 성인 승이를 맡아, 아역 배우가 다져놓은 감정을 매끄럽게 이어갔어야 했다. 특히 어린 승이를 연기한 아역 박소이에 대해서는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오히려 편했다고 했다.
“(박)소이는 같은 캐릭터를 맡은 걸 떠나서 둘이 비슷한 점이 많아요. 어린아이인데도 현장에서 엄마를 찾지 않고 스태프들이랑 잘 놀았어요.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죠. 저도 현장을 좋아하고 성격적으로도 베이스가 비슷해서 소이가 먼저 찍은 분량을 보고 선배님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밸런스를 잘 맞춰 주셨어요. 고등학생으로 나오는 친구는 감독님께서 저랑 닮은 배우를 섭외해서 그게 또 좋았죠.”
극중에서 하지원은 성동일과 부녀지간으로 그려진다. 실제 나이로 따지면 아빠뻘은 아니지만, 진짜 부녀관계인 것처럼 각별하게 느껴진다.
“성동일 선배님과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선배님이 저에게 아빠가 되는 과정은 힘들지 않았어요. 선배님은 누구나 딸이 될 만큼 자연스럽게 아빠가 돼주시잖아요. 선배님의 존재감 자체로, 공기마저 아빠와 딸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죠. 그게 선배님의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저를 너무 잘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는 천진난만한 아이같은 모습 에너지가 있으세요. 그래서 더 잘 맞지 않았나 싶어요.”
어른 승이를 연기하는 하지원은 극중에서 갓 스물을 넘긴 풋풋한 대학생 모습까지 직접 연기해 눈길을 모았다. 그는 동안 외모를 자랑하며 자연스럽게 대학생의 얼굴로 녹아들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대학생 연기를 거부했다고.
“처음에는 거부했어요. 감독님이 계속 설득했고, 결국 제가 설득당했어요. 대학생부터 제가 감정을 이끌어 가주면 조금 더 매끄럽게 연결될 것 같다고 설득을 하신 거죠. 어쩔 수 없이 한 거예요.(웃음) 스타일리스트 팀들이 최대한 대학생답게, 어려 보이게 보이게 꾸며주셨어요.”
‘담보’에는 승이 엄마와 할머니로 배우 김윤진과 나문희가 각각 특별출연한다. 선배 배우들과의 호흡을 통해 후배 배우로서 자극받았고, 감정연기를 더 끌어낼 수 있었다고 하지원은 설명했다.
“김윤진 선배와 재회하는 장면이 제 첫 촬영이었어요. 그래서 한번에 감정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죠. 감독님이 슬픈 음악을 틀어주셨고, 저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감정을 더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촬영에 들어갔는데, 김윤진 선배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배님의 눈을 딱 보자마자 교감이 됐고, 진짜 엄마와 딸의 감정이 올라왔어요. 걱정했던 것 보다 순조롭게 촬영이 됐죠. 나문희 선생님이나 김윤진 선배님 덕분에 제가 상황에 몰입해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어요.”
‘담보’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접한 하지원. 그도 가족에 대한 생각이나 개념이 바뀌었을까.
“‘가족이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이 영화를 통해 받게 됐어요. 제가 생각하는 가족은 날 가까이서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피가 섞이지 않더라도요. 요즘에 가족이지만 가까이 못보고 지내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가족이 아니지만 정말 날 정말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면 그게 가족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1996년 KBS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한 하지원은 데뷔 25년 차를 맞았다. 천만 영화 ‘해운대’를 비롯해 드라마 ‘다모’, ‘발리에서 생긴 일’, ‘시크릿 가든’ 등의 히트작을 낸 그는 ‘믿고 보는 배우’로 불리는 것에 대해 “아직은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요즘 여유가 있다 보니까 배우 생활 보다도 진짜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늘 작품 속에서의 캐릭터는 어떤 삶을 살고, 매일 그런 생각을 하고 살다가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하면서 차분해졌죠. 앞으로 좋은 작품에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그런 기회가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특히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들을 연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