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저무는 석유 시대?…오일 메이저가 바빠졌다

오일 메이저 BP "석유수요 정점 작년이었을수도"

재생에너지+코로나19 여파에 에너지 업계 분주

풍력 투자하는 유럽계vs탄소 저감 나선 미국계

석유 에너지, 재생에너지로 대체될까도 관심

글로벌 오일 메이저인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지난달 내놓은 에너지 전망 보고서는 전 세계 석유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BP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향후 30년의 석유 수요를 전망했는데, 예측은 모든 시나리오에서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가장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유지(Business-as-usual) 시나리오에서조차 석유 수요는 10년 후인 2030년 이후 꺾일 것으로 봤다. 심지어 그렇지 않은 탄소중립(net zero) 상황에서는 2019년이 석유 수요의 정점이었을 것이라는 파격적인 분석도 제시했다. 글로벌 오일 메이저 스스로 석유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다. 국내 정유업계의 한 인사는 “오일(석유)로 먹고 사는 BP가 코로나19로 석유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오일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것은 한 마디로 ‘우리 주식은 사지 말라’는 자해 행위를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석유의 종말을 앞당길까. 그렇다면 과거 한때 ‘세븐 시스터즈(7 sisters)’로 악명 높았던 오일 메이저들은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나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신재생에너지는 지난 100여년 간 막강한 ‘오일 파워’로 세계를 지배해 온 석유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을까.


분주하지만 방향 다른 오일 메이저

석유 시대의 앞날을 어둡게 보는 BP의 전망은 그들의 행동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외신에 따르면 BP는 미국 해상풍력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최근 11억달러를 들여 미국 뉴욕과 뉴잉글랜드 지역 해상풍력 프로젝트 지분을 매입했다. 오일 메이저가 신재생에너지인 풍력 발전 산업에 진출했다는 소식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BP는 이미 기존의 ‘빅 오일’ 그 자체에서 벗어나 종합에너지회사(IEC)로의 전환을 선언한 상태다.



BP 뿐 아니라 토탈, 로열더치셸 같은 유럽계 메이저들도 탄소 저감 등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나섰다. 전기·수소차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운송수단이 영역을 넓히고 있어는 점에서 변화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이 된다. 적어도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 기후변화협약의 성실한 이행자들인 셈이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올해까지 유럽계 오일 메이저들의 재생에너지 투자는 90억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엑손모빌, 셰브론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계 오일 메이저들의 행보는 유럽계의 그것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유럽계 메이저들이 거센 기후변화 흐름에 순응해 재생에너지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 미국계는 오히려 석유 시대의 장기 지속을 예견하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 대표적인 사례가 나왔다. 중소 셰일업체 노블에너지를 인수한 셰브론이다. 이 회사의 대니얼 드룩 에너지 전환 담당 부사장은 “우리의 전략은 유럽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현재 자산(화석연료)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탈탄소 처리해 신기술과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셰브론은 대신 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하는 프로젝트에 11억달러 넘게 투자를 했다. 유럽계가 재생에너지로 무게추를 옮기고 있다면 미국계는 탄소 저감에 방점이 찍혀 있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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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석유의 운명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며 항공유 수요가 급감하는 등 운송 연료 수요는 급전직하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으로 만드는 국내 정유사들은 상반기에만 5조원 넘는 손실을 냈다. 이러한 ‘오일 공포’은 자연스럽게 코로나 이후에 과연 이전 수요를 회복할 수 있을 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가 일시적 충격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동 제한이 완화되면 석유 수요가 다시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경제의 성장이 멎지 않는 한 석유 수요는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계 석유회사들이 대체로 이런 시각이다.



세계적인 에너지 전문가인 대니얼 예긴 IHS마킷 부회장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전환은 필연적이지만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을 것”이라면서 당분간 석유의 시대가 지속될 것으로 예견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에너지(석유) 수요에 타격을 준 건 맞지만 회복 가능하다고 본다”며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고 속단해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BP는 “석유 소비가 코로나 발생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석유공사는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엑슨모빌은 코로나19 영향이 항구적이지 않기에 세계 경제규모 확대에 따른 석유 소비 증가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인데, BP가 이와 상충되는 전망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에너지 전환 속도의 문제를 떠나, 신재생에너지는 석유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궁극적인 탈석유는 현실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의 저자 최지웅 씨는 최근 석유공사 블로그에서 “신재생에너지는 석유의 자리를 잠식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은 취지의 주장을 했다. “신재생에너지와 석유는 쓰임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대체재가 아니다. 장화와 하이힐처럼 용도가 판이하게 다르다. 석유의 가장 큰 용도는 차량, 선박, 항공기 등의 연료로 쓰이는 것인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전기 생산을 위한 발전용이 대부분이다.”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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