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 피살 사건과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동조사 요구에 7일째 아무 대답도 내놓지 않고 있다. 해양경찰의 시신 수색도 성과가 없어 이씨 피살 사건은 ‘미제’로 묻힐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반면 코로나19에 감염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즉각 위로 전문을 보내는 등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 면모를 보여주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를 주도했던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 1부부장도 이씨 피살 사건 이후 밝게 웃는 모습으로 재등장했다.
4일 청와대와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까지도 우리 정부가 요구한 진상조사를 위한 공동조사 및 군사통신선의 복구 등에 관해 전혀 응답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 정상 간의 친서가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정보원과 북한 통일전선부 채널 역시 조용하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확연히 다른 사건 경위와 관련해 북한에 공동조사를 요청했다. 북한은 앞서 △이씨가 월북 의사를 표명했는지 △시신을 정말 소각했는지 등을 놓고 우리 군의 첩보와는 전혀 다른 해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북한의 동향은 ‘김 위원장의 사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는 분위기가 강해 보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외려 ‘해안 지역의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하며 이씨 피살을 정당화하는 듯한 움직임도 보였다.
노동신문은 지난 3일 ‘대중의 자각적 열의를 적극 발동하여’ 제목의 기사에서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적 특성에 맞게 해안가와 그 주변에 대한 엄격한 방역학적 감시를 항시적으로 강화해나가고 있다”며 “바다로 밀려들어 오는 오물 처리를 비상방역 규정의 요구대로 엄격히 할 수 있게 조건 보장 사업을 실속 있게 앞세워 사소한 편향도 나타나지 않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김 위원장은 코로나19에 감염된 트럼프 대통령 부부에게 “당신은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고 위로 전문을 재빠르게 보내는 등 북미 정상 간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코로나19에 걸린 외국 정상에게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위로 메시지를 보내기는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서거 소식이 전해진 쿠웨이트의 셰이크 사바 알아마드 알사바 국왕 앞으로도 애도를 표하는 조전을 보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에서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북한의 속내가 엿보인다고 분석하면서도,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성묵 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우리 국민 피살 사건에 대한 김 위원장의 사과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위로 등은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한 행보일 뿐”이라며 “공동조사 등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서 봐야 얻을 것은 없다는 북한의 태도가 여전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