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이낙연 “기업규제 3법 늦출 수 없다”...절절히 호소했는데 허탈한 기업들

與, 결국 기업규제 3법 강행에

기업들 허탈한 웃음 ‘역시 마이동풍’

“외부 투기세력에 맨몸으로 맞서는 처지”

7일 경총 회장단회의 열어 규제현안 논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기업계의 우려를 듣고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하고 부분적으로 보완할 것이 있으면 보완하겠다”면서도 “다만 이것을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하기는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는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의 정기국회 내 처리 원칙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손경식(왼쪽 네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을 방문한 이낙연(왼쪽 다섯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안내하고 있다. 손 회장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은 글로벌 기준보다 과도하게 높은 규제”라며 “기업경영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권욱기자손경식(왼쪽 네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을 방문한 이낙연(왼쪽 다섯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안내하고 있다. 손 회장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은 글로벌 기준보다 과도하게 높은 규제”라며 “기업경영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권욱기자



이 대표는 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전날 제안한 노동법 개정안 논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더 두텁게 포용할 때”라고 말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다만 “우리 기업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표적이 되는 것은 막고 싶다”고 말해 ‘3%룰(감사위원 분리 선출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범위)’ 수정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 대표가 이날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해 손경식 경총 회장과 간담회를 하며 민주당의 기존 방침을 고수할 계획임을 밝히자 재계는 ‘거여의 독주’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대표는 인사말에서 지난 7월 경총 50주년 기념식 슬로건을 언급하며 “함께하는 경제, 함께 여는 미래를 기억한다” “경총이 국가적 위기마다 고통을 분담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주도했다”고 강조해 ‘기업규제 3법’에 대한 재계의 협조를 압박했다. 이어 “경총이 영문이름을 기존 사용자(EMPLOYERS)에서 기업(ENTERPRISES)으로 변경했는데 손 회장이 강조한 사용자보다 기업과 경제 전체를 보는 명칭 변경”이라며 기업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는 이 대표에 앞서 손 회장이 인사말로 건낸 “사용자에 부담을 초래한다”고 말한 부분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산업계는 여당의 일방통행식 입법 추진에 강력히 반발했다. 손 회장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서는 기업을 살리고 경쟁력을 높이는 제도 개선이 필요한데 국회에는 기업 경영에 제약을 가하는 법안이 상정돼 있어 걱정이 크다”고 우려했다. 또 “코로나19 위기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번 국회에서는 규제적 법안보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 조성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며 “시급하지 않은 경제 관련 제도 개선 법안은 경제 정상화 이후로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손 회장은 이 자리에서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한 산업계의 우려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경총은 7일 경총 회장단회의를 열어 국회에 상정된 기업규제 법안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李, 기업규제3법 갈 길 간다...기업들 “벽보고 얘기하는 느낌”

“최선을 다해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도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밀어붙이겠다고 하니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이 듭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일 경영계의 절박한 호소에도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고수하자 허탈해하며 이같이 말했다.

당초 경영계에서는 이날 이 대표와의 만남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 대표가 직접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찾아 기업들의 목소리를 듣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달 22일 국회를 방문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만나 “기업규제 3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관련 분야의 의견을 듣고 당연히 경제계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경총 찾은 李대표에 기대 걸었는데...


이날 손경식 경총 회장과 대기업 사장단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법안 논의 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이 대표에게 전달했다. 또 기업규제 3법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하고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해 생존을 위한 대응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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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에 참석한 한 대기업 사장은 “원래 40~50분 정도 하기로 한 간담회가 1시간 넘게 진행됐고 기업들의 전반적인 걱정을 이 대표에게 직접 전달했다”면서 “여당이 기업들의 의견을 잘 들어보겠다고 마련한 자리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경영계의 요구에도 법안 처리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부분적으로 보완할 것은 보완하겠다”면서도 “다만 법안을 늦추거나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경영계에서는 이 대표가 기업들의 절박한 호소를 면전에서 외면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기업 경영 상황이 좋지 않고 새로 도입하려는 법안의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절박하게 호소해도 정치권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역시나 마이동풍이었다”고 말했다.

◇기업들 “만남은 통과의례에 불과” 불만

상법 개정안의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내부거래 규제 대상 확대로 역차별을 받게 된 지주회사들도 허탈해했다. 한 지주회사 관계자는 “이 대표의 발언에 헛웃음이 나왔다”며 “솔직히 이번 만남에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이 대표가 단칼에 기업규제 3법의 방향 수정이나 지연은 안 된다고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또 “이제 기업들은 진짜 총칼을 다 뺏기고 외부 투기세력에 맨몸으로 맞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며 “대통령의 공약과 관련된 사항이라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고 덧붙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번 이 대표와 기업인의 만남은 여권이 기업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통과의례일 뿐 실질적인 협의나 진전된 사안은 없었다”며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안을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경제가 위기 상황인 만큼 경제가 정상화된 뒤 제도 개선에 나서달라는 경영계의 주장을 이 대표가 일축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경총, 7일 회장단회의 열어 규제방안 논의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는 “중대한 입법이고 기업 입장에서 위험이 크다고 호소하는 마당에 일정대로 가겠다고 하는 것은 집권당 대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라며 “엄중한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나 고민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이 대표는 규제 3법 도입을 늦추기 어렵다는데 지금 중요한 것은 처리 시점이 아니고 법안의 내용으로 본말이 전도된 상태”라며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해달라는 기업의 합리적인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와 미중갈등 등으로 기업 사정이 좋지 않은 시점에 규제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타이밍이 전혀 맞지 않는다”며 “과거 이들 정책이 도입되지 않은 것은 타당성이 확보되지 못해서였던 만큼 21대 국회에서 의석수만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경제단체들은 기업규제 3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지속적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경총은 7일 회장단회의를 열어 규제 3법과 노동법 등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산업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으기로 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조만간 민주당 관계자들과 함께 기업규제 3법의 문제점과 대안 등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민·박시진·김혜린·송종호 기자 noenemy@sedaily.com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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