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9일 독일 수도 베를린 당국이 도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설치 허가를 취소한 것에 대해 “전향적인 움직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베를린 미테구가 지난 7일(현지시간)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한국 관련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에 오는 14일까지 철거 요구 공문을 보낸 것과 관련해 “계속 상황을 주시하겠다”면서 “전향적인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가토 장관은 이어 위안부 문제 해결을 확인한 2015년 한일합의와 관련해 “착실한 시행을 요구해 나가겠다”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베를린 미테구는 사전에 알리지 않은 비문을 설치해 독일과 일본 간의 관계에 긴장이 조성된 점을 허가 취소 이유로 밝히고 있다. 또한 “미테구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고 일본에 반대하는 인상을 준다”면서 “일방적인 공공장소의 도구화를 거부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문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로 데려갔고, 이런 전쟁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생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는 짧은 설명이 담겨있다.
그러나 독일 측의 이런 움직임은 일본 정부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은 프랑스를 방문 중이던 지난 1일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독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문제를 거론했다. 당시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모테기 외무상은 마스 장관에게 베를린 중심부의 ‘위안부상’(소녀상)이 일본 정부 입장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철거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프랑스를 방문한 모테기 외무상은 원래 독일도 갈 예정이었지만 경호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마스 장관이 자가격리에 들어가자 독일 일정을 취소하고 전화회담으로 대체해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모테기 외상은 귀국 후인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마스 장관과의 화상 회담 때 소녀상 철거를 위한 협력을 요청했는지에 대해 “본 건에 관해 대화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동서 분열에서 하나의 베를린이 태어났다. 여러 사람이 오가고 공존하는 도시가 베를린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베를린에 상(소녀상)을 설치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과거 사과에 반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앞서 베를린 미테구의 비르켄 거리와 브레머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코리아협의회 주도로 지난달 25일 세워진 소녀상의 제막식이 같은달 28일 열렸다. 독일에서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고, 공공장소에 세워진 것은 첫 사례다. 이전에는 2017년 남동부 비젠트의 사유지인 네팔 히말라야 공원, 지난 3월 프랑크푸르트의 한인 교회에 건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