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장수 곽자의(697~781)는 안녹산의 난 때 반란군을 토벌하는 등 숱한 공을 세워 무과 장원 출신으로는 드물게 재상에 두 번이나 발탁됐다. 슬하의 아들 8명과 사위 7명 모두 입신출세했고 자손번창했으며 본인도 장수했다. 평민으로 태어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누렸기에 훗날 분양왕(汾陽王)으로 봉해진 이름을 따 ‘곽분양 팔자’ 혹은 ‘곽자의 팔자’라는 말이 통용됐다. 그래서 등장한 그림이 ‘곽분양행락도(行樂圖)’. 생일 맞은 곽자의를 ‘백자천손’의 많은 자손들과 처첩, 신하, 손님들이 에워싸고 있는 주변으로는 호화로운 건물과 풍요로운 자연이 펼쳐진다. 그림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은 바람이 담긴 이 그림은 중국에서 유행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는데, 기록에 따르면 조선 후기 왕실 가례행사 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의 혼인 때도 ‘곽분양행락도’가 사용됐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이 최근 개막한 ‘정원의 풍경-인물·산수·화조’를 통해 ‘곽분양행락도 10폭 병풍’을 비롯한 귀한 유물 5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 3대 사립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호림박물관이 지난 2013년에 개최한 민화 전시 이후 최근 7년간 수집한 신소장품들로, 올해 민화를 주제로 연간기획전을 마련한 박물관이 상반기 ‘서가의 풍경-책거리·문자도’에 이어 개최한 전시다.
3층의 ‘인물·산수’가 첫 번째 전시실에 마련됐으니 내려오면서 감상해야 제맛이다. 노모를 위해 한겨울에 죽순을 구하러 나갔다가 눈물 떨어진 자리에서 돋은 죽순으로 어머니의 병을 낫게 했다는 맹종, 계모가 겨울에 생선이 먹고 싶다고 하자 몸으로 얼음을 녹여 잉어를 구해온 ‘와빙구리(臥氷求鯉)’의 왕상 등을 그린 그림은 ‘효자도’로 분류된다.
민화는 대체로 왕실에서 제작됐던 화려한 전통이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자유로운 표현으로 진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농사짓는 장면을 그린 ‘경직도’는 왕과 왕자들을 위한 교육용 그림이었지만 이후 유교 대중화와 함께 풍속화풍으로 그려졌다.
특히 ‘화조도’는 궁중 병풍의 우아함이 민가의 장식용으로 변화했기에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화왕(花王) 모란은 ‘궁모란도’라 불릴 정도로 왕실이 사랑한 꽃인데, 괴석과 함께 그려진 모란도 등이 다채롭게 발전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외에도 군자를 상징하는 연꽃, 부부금실과 다산을 바라는 새와 나비 그림이 병풍 사이를 넘나들며 누구나 바라는 행복을 기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겨냥한 건강과 무병장수도 마땅히 포함돼 있다. 전시 말미에는 민화를 현대 그림으로 새롭게 해석한 박생광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전시 기간은 코로나19 확산 추이에 따라 유동적이라 미정이다. 성인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