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투뉴쿠크

“성을 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할 것이다.” 7세기 돌궐의 명장 아시테 투뉴쿠크의 말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에 위치한 그의 비석에는 이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다만 중국 역사서의 기록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구당서’는 “성채를 쌓고 산다면 옛 풍속을 바꾸는 것이라 하루아침에 이점을 잃으니 반드시 장차 당나라에 병합되고 말 것”이라 적었다. ‘신당서’는 “성을 쌓고 살다가 싸움에 한 번 패하면 반드시 저들에게 잡히고 말 것”이라 전한다.

645년에 태어나 당나라에서 포로로 지내던 투뉴쿠크는 682년부터 돌궐의 왕 묵철가한 등과 더불어 당나라에 맞서 싸우며 제국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는 불퇴전의 전사였지만 언제나 강경 일변도만 고집하지도 않았다. 697년 묵철가한이 당나라 사신의 오만함에 화가 나 죽이려 하자 극구 만류했을 정도로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분명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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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년에 사망한 그의 비문에는 “투뉴쿠크는 가한(왕)의 업적에 자신이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하며 자신도 늙었다고 말했다”고 새겨져 있다. 투뉴쿠크는 그렇게 죽었지만 명언만은 480여년을 지나 몽골의 칭기즈칸을 통해 되살아났다. 칭기즈칸이 1206년 금나라를 정복하고 보위에 올랐을 때 신하들이 연경(베이징)의 화려함에 취해 그곳에 성을 쌓고 정착하기를 권하자 “성을 쌓는 자 망하리라”며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 이후 칭기즈칸은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개척해냈다.


중국어로 ‘아사덕원진(阿史德元珍)’으로 표기되는 투뉴쿠크는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발해의 대조영이 동북방에서 당나라와 맞설 때 돌궐은 서북방에서 당을 협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발해와 갈등하며 공존했다. 이 과정이 그려진 KBS드라마 ‘대조영’에 투뉴쿠크는 묵철가한과 함께 등장한다. 최근에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성을 쌓는 자는 망하리라”는 말로 광화문집회 봉쇄를 비판하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 원성을 쌓는 자 또 망하리라”고 맞받았다. 옛 영웅의 명언은 유전하며 울림이 있기 마련인데 우리에게는 정쟁의 수단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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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진 논설위원

문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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