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대사 한 마디 없이 ‘선악의 경계’를 말하다

[인터뷰] 영화 '소리도 없이' 주연 유아인

도전장 같은 시나리오에 흥미

연기때 새로운 몸 움직임 발견

관객들 어지간한 변화 안봐줘

더 변신하는 모습 보여주고파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세간에 알려진 본업은 용달차 달걀 판매 보조다. 하지만 제대로 돈 버는 일은 따로 있다. 부업으로 범죄 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체를 수습한다. 언제 어디서든 성실 근면하게, 묵묵히 일을 한다. 핵심은 ‘묵묵히’다. 단어 뜻 그대로 말이 없다. 시끌벅적한 시장통에서 달걀을 팔 때도, 피범벅이 된 시체를 산으로 옮겨 땅에 파묻을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대신해 생각과 마음을 읽으려 애써야 하는 건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지난 초여름 영화 ‘#살아있다’에서 좀비와 사투를 벌였던 배우 유아인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에서 말하기를 포기한 시체 청소부 태인 역을 맡았다.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다. ‘천의 얼굴’이라는 타이틀을 내놓지 않으려는 듯 이번에도 도전적인 작품을 택했다.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유아인은 개봉 직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태인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하면 전형적이지 않게, 색다르게 연기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며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몸무게를 15㎏나 불렸고, 삭발도 했다. 시나리오에서 태인은 긴 머리에 깡마른 모습으로 설정돼 있지만 감독과 상의 끝에 캐릭터의 외형을 바꿨다. 이로 인해 사업 파트너 창복(유재명 분)이 태인에게 홀로 시체를 옮기게 하고, 삽질을 시키는 장면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다른 인물과 몸싸움 과정에서 태인이 주는 위압감도 더 커졌다. 대사 없는 연기가 어려울 법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연기할 때 몸의 새로운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어 반갑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유아인은 “시나리오 자체가 도전장 같았다”며 “빛과 소리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영화의 영역에서 ‘소리도 없이’라는 제목을 달았다는 자체가 놀랍고 도발적이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이번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 홍의정 감독에 대해 묻자 “도발적이고, 신인이지만 노련하게 작업하는 감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 이번 작품 곳곳에서 신인 감독의 패기와 도전이 느껴진다. 살인과 유괴, 납치 등 범죄 영화의 주된 소재를 다뤘지만 범죄 영화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선과 악이 모호한 환경에서 인간이 각자 생존을 위해 대응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이 자꾸 떠오른다.



쉽지 않은 작품임에도 유재명과 호흡을 맞춰 인간 사회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 유아인은 다음 작품에서도 연기 변신을 할 것임을 슬쩍 예고했다. 유아인은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는 인간을 확장해 나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이제는 관객들이 어지간한 변화는 변화로 안 봐주셔서 서운하기도 하지만, 변화의 순간을 관객들과 공유하며 함께 나아가고 싶은 의지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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