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지난 2017년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만났는데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돌아가신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 우리 어머니도 여기서 태어났다면 이런 일을 당했을 수 있다’며 마음 아파했죠.”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부인인 김소연(50·사진)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 연방주 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대표는 1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베를린에 ‘소녀상’이 설치됐다가 곧바로 철거 통보를 받은 것과 관련해 “남편은 ‘한 나라가 미래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비록 역사의 어두운 면이라 하더라도 이와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2000년대 초 독일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이룬 슈뢰더 전 총리는 2017년에 자서전 출간차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피해 할머니들을 만난 얘기를 하며) 독일은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남편은 당시 여성에게 가해진 전쟁폭력의 참혹함을 전시관에서 관람한 뒤 피해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일본은 소녀상 이슈를 한국의 반일감정이나 한일 간 민족감정으로 몰고 가며 독일 정부에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다. 정부 각료들이 베를린 소녀상에 대해 조치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며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가 소녀상 설치 허가를 받기까지 고생을 많이 했는데 제막한 지 얼마 안 돼 갑자기 미테구청의 철거 명령이 내려져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독일에서 정부 차원에서 공식 승인한 뒤 이렇게 빨리 철회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많은 시민들이 항의시위에 참여하거나, 과거 유럽에서 여성에게 자행된 전쟁폭력을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는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베를린 시 정부가 사회민주당·녹색당·좌파당이 연합한 진보정권인 상황에서 미테구청의 철거 결정에 의아하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고 그만큼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고 했다. 실제 사민당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소녀상 철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한 녹색당 의원은 “미테구청이 독일 외교부와 베를린 시 정부의 압박으로 결국 일본 정부의 압력에 무릎을 꿇었다”며 비판했다. 독일이 전후 나치 청산 과정에서 보여준 역사의식과 전면 배치돼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번에 역설적으로 소녀상이 전쟁폭력에 참혹하게 유린된 여성인권에 대한 보편적 담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녀상은 한일 간의 민족감정 문제가 아니라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끔찍한 피해를 입는 여성의 인권에 대한 보편성과 상징성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라며 “베를린은 도심에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두고 있는데 소녀상도 이런 아픈 역사를 환기하는 기억문화의 일부”라고 역설했다.
소녀상이 일단 철거 위기는 벗어났지만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현재는 소녀상을 주도한 코리아협의회가 철거명령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하고 미테구청장이 시위현장에서 “조화로운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해 일단 위기는 넘겼지만 소녀상의 계약기간이 1년이라 이후 연장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과거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에 같은 실수가 재발할 수 있다”며 “후세대는 전쟁에 대해 죄가 없지만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김소연씨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베를린에서 소녀상을 설치한지 얼마 안돼 일본의 집요한 로비로 철거결정이 났다. 현지에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나.
△독일에서 공공장소에 평화의 소녀상과 같은 기념상이 설치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가 설치 허가를 받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며 진행했겠는가. 그런데 소녀상 제막식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갑자기 구청의 철거 명령이 내려져 깜짝 놀랐다. 독일에서 공식 승인된 결정이 이렇게 빨리 철회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일본의 정부 각료들이 공개적으로 베를린 소녀상에 대해 조치하겠다는 발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녀상 철거 결정이 급하게 내려진 것에 대해 석연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독일의 일부 관청의 태도와 달리 독일의 일반 시민들은 소녀상의 존재를 전쟁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인권에 대한 보편적 가치 담론으로 받아들이고, 유럽에서 여성에게 자행된 전쟁폭력을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독일, 그 중에서도 분단을 일상으로 체감하고 도심 한가운데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두고 있는 베를린은 특별한 기억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공간으로 소녀상은 이런 기억문화의 일부이다. 베를린의 소녀상은 반드시 존치되어야 한다.
-남편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지난 2017년 ‘나눔의 집’을 방문했는데 이번 사태에 관해 뭐라고 하나.
△남편이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한국 역사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현장에서 처음 직접 대면했다. 아마 제3국 전직 정부수반으로는 최초의 방문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전쟁폭력의 참혹함을 전시관에서 관람하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시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중 ‘백발이 성성한 할머님 한 분이 돌아가신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 내 어머니도 이 곳에 태어났더라면 이런 일을 당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저에게 털어놓더라. 이번 소녀상 문제에 관해서도 ‘한 나라가 미래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비록 역사의 어두운 면이라 하더라도, 이와 대면해야 한다’고 했다.
-베를린 미테구청 측의 소녀상 철거결정에 관해 독일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독일 사람들이 시위에 많이 참여해 준 것 자체가 독일 시민사회가 그만큼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소녀상이 한일양국의 갈등 문제가 아니라 전쟁폭력으로 유린된 여성인권에 대한 보편적 담론이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이다. 또한 베를린 시정부가 소위 ‘적-적-록’으로 불리는 사회민주당, 녹색당, 좌파당 연합 정권인데, 진보 계열의 정당이라는 점에서 더욱 미테구청의 결정에 의아하게 생각하고 그만큼 비판 목소리도 더 높다. 이번 일은 독일이 전후에 나치의 역사 청산 과정에서 보여준 역사의식이나 방식과도 전면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독일 시민들은 독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독일은 2차대전의 전범인 나치를 비교적 철저하게 청산해 왔는데 어떻게 소녀상 철거결정이 났다고 보나. 일본의 로비가 그렇게 집요한가.
△사민당 지부가 공식적으로 소녀상 철거 반대 입장표명을 한 것뿐만 아니라, 녹색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 한 녹색당 의원은 ‘일본정부가 이 사안으로 매우 검열적이고 민족주의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미테구청이 독일 외교부와 베를린 시정부의 압박으로 결국 일본정부의 압력에 무릎을 꿇었다’고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녹색당 원내 대변인도 ‘폰다셀 구청장은 녹색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일본의 정치적 압박 때문에 저버렸다’고까지 매우 강도높게 비판했다.
-소녀상 철거결정 이후 시민단체 등의 반대 움직임과 현재 진행상황, 앞으로 전망은.
△현재는 소녀상을 주도한 코리아협의회가 철거명령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하고 미테구청장이 시위 현장에 등장해서 ‘조화로운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제안하면서 일단 철거 위기는 넘겼다. 법원의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다. 하지만 1년으로 계약한 소녀상 설치를 이후 연장하는 문제가 있는데 지금부터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이 소녀상에 관해 해외에다가 어떻게 접근해 설명하는 게 좋다고 보나.
△소녀상 문제를 한일간의 민족감정이나 반일감정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일본정부가 독일정부에 소녀상 철거를 요청할 때 설득 근거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베를린의 소녀상은 이런 양국의 민족감정으로 축소되어 해석되면 안 된다. 세계가 모두 공감하는 전쟁폭력에 유린된 여성인권에 대한 보편성을 강조하고, 소녀상이 그 상징성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담론을 펼쳐야 한다.
-독일과 일본은 둘 다 전범이나 이후 대처가 완전히 다른데 일본에 하고 싶은 말은.
△과거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에 같은 실수가 재발될 수 있다. 후세대는 전쟁에 대해 아무 죄가 없지만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