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팬데믹이 부른 불평등 심화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美 소득상위 25%는 일자리 회복

하위 25% 일자리 20%이상 감소

민주당의 구호패키지 주장 옳지만

공화측 양보안 거부만 할게 아니라

일단 수용하고 선거후 보완이 최선

파리드 자카리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차별을 모르는 공평주의자다. 세계적 대유행병은 부자와 빈자, 백인과 흑인, 도시와 농촌을 가리는 법이 없다. 미국 대통령까지 전염됐으니 달리 덧붙일 말이 없다. 그러나 팬데믹은 실질적으로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미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에 수십년 이래 최대폭의 경제적 불평등을 가져왔다.

미국 내부의 불평등에 관한 온갖 우려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차원의 경제적 불평등은 지난 수십년 동안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일부 개발도상국들의 눈부신 경제성장 덕분에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극빈자들의 비중은 지난 1990년의 4분의1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이코노미스트지에서 밝힌 몇몇 통계치는 수십년에 걸쳐 이룬 진전이 불과 몇 달 만에 도로아미타불이 됐음을 보여준다. 세계은행은 올 한해 동안 지구촌 인구 중 1억명이 새로 극빈층이 된 것으로 추산한다. 사하라사막 이남의 국가들을 통칭하는 서브-사하라 아프리카는 지난 25년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누렸지만 올해는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올 들어 기아에 직면한 사람들이 두배나 늘어난 2억6,0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게이츠재단도 아동 예방접종률이 20년 전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같은 통계치의 이면에는 기아에 허덕이고 병마에 시달리는 이들의 절박함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라는 미국도 빈부격차가 심하다. 새로 나온 보고서들에 따르면 지난 몇 달 사이에 600만~800만명이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줄잡아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전기요금을 내지 못하거나 돈을 절약하기 위해 식사를 거르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실직자’의 38%는 한달도 버티기 힘들다.


팬데믹이 어떻게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네 차례의 경기침체가 소득 상위 25%와 하위 25%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1990년, 2001년과 2008년의 경기침체기에 두 그룹은 모두 3% 정도의 실직률을 보였다. 반면 팬데믹 시기 소득 상위권 25%의 일자리는 초반에 약간 떨어졌다가 현재는 거의 완전히 회복된 상태까지 올라선 반면 하위 25%의 일자리는 20% 이상 감소했다. 은행원·컨설턴트·변호사·학자 등 원격근무가 가능한 근로자들의 생활은 일시적 하락을 거친 후 곧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반면 식당, 호텔 유람선, 놀이공원, 쇼핑몰 등의 일자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관련기사



안타까운 것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지만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4월 의회와 행정부는 대규모 경기부양 패키지를 통과시키는 등 포괄적 재난구호를 위한 대담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 경기부양 프로그램은 대성공을 거뒀지만 이로 말미암아 워싱턴 정가는 안일함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부양 프로그램 시효가 대부분 만료된 지금 공화당과 민주당은 다시 당파 싸움을 벌이고 있다. 행정부가 원래 제시한 것보다 더 큰 구호패키지를 내놓아야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옳다. 팬데믹으로 막대한 세수결손을 일으킨 전국 각지의 주 정부와 시 정부가 아무런 잘못 없이 벌을 받는 것 역시 민주당의 지적대로 온당하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일단 대국적인 견지에서 공화당으로부터 끌어낸 양보를 수용한 후 미진한 부분은 선거가 끝난 다음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난주 CNN의 간판 앵커인 울프 블리처는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1조8,000억달러 상당의 구호패키지 제안을 거부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강하게 몰아붙였다. 수세에 몰린 펠로시 의장은 블리처가 트럼프 행정부를 옹호한다고 비난을 퍼부어가며 역공을 시도했다. 그는 공화당이 “우리가 지닌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국가적 비상시국에 이런 태도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트럼프 행정부의 제안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이미 그들은 1조8,000억달러에 달하는 구호 패키지의 규모에 못마땅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민주당이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원에서 통과시킨다면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그의 동료 의원들에게 압박이 되지 않을까.

필자로서는 엘리트들이 누리는 생활의 상대적 정상성(relative normalcy of life)으로 서민들이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줌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현재 상황은 그저 약간 어수선하고 이상할 따름일 수 있다. 그러나 수천만명의 미국인 그리고 수억명에 달하는 지구촌 주민들에게 현 상황은 대공황이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마땅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