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 압도적으로 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보인 윤석열 총장이 지난 22일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국민에게 봉사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정치권 전반이 술렁이고 있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탈당 사태에 더해 윤 총장이 정계 진출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내년 서울시장선거를 기점으로 진보·보수가 아닌 ‘제3지대’가 세력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여권은 윤 총장에게 “옷을 벗고 차라리 정치하라”며 맹폭을 가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윤 총장을 향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무시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한목소리로 검찰총장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이 대표는 윤 총장이 언급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두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정계 진출’과 관련한 윤 총장의 애매모호한 답변이 여권의 격앙된 반응에 불을 지폈다. 윤 총장은 전날 국감에서 정계 진출 의향에 대한 질문에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옷 벗고 정당에 오셔서 정치적 논쟁을 하라”고 몰아붙였다.
윤 총장은 올해 초까지 야권에서 유일하게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0%를 웃돈 인물이다. 다만 본인 스스로 지난해 7월 국회에 나와 “정치에 소질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고 여론조사기관에 “대선후보에서 내려달라”고 요청하며 정계 진출에 대한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 여권과 각을 세우며 “퇴임 후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발언에 담긴 윤 총장의 진의와는 별개로 여야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소 성급하긴 하지만 야권에서는 바로 제3지대론이 등장했다. 최근 금 전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가운데 차기 서울시장선거에서 ‘비민주·국민의힘’ 세력을 중심으로 한 중도진영이 뭉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여기에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윤 총장까지 가세하면 제3지대의 지형은 크게 확장된다.
윤 총장과 금 전 의원, 두 인물이 바로 보수진영과 융합하기는 어려운 현실도 이 같은 제3지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금 전 의원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신의 정치적 뿌리로 강조하고 있다. 결국 보수진영에서 스스로 금 전 의원을 추대해 서울시장선거 단일후보로 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윤 총장도 이른바 강성 보수진영 인사들과 앙금을 넘어 원수지간이다. 윤 총장은 2016년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헌정 사상 ‘대통령의 파면’을 이끈 수사의 책임자다. 현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라 이른바 ‘적폐수사’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하지만 ‘미니 대선’으로 불리는 서울시장에서 금 전 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이 손을 잡고 중도진영을 세력화한다면 기존의 정치 문법은 달라질 수 있다. 금 전 의원이 변수가 돼 서울시장선거가 ‘중도·보수·진보’의 3자 구도로 흐르고 야권 통합이 이뤄진다면 중도와 보수진영 가운데 지지를 많이 얻는 후보로 단일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통합한 중도·보수진영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윤 총장이 나올 길도 열린다는 것이다.
윤 총장의 임기는 서울시장선거가 끝난 내년 7월이다. 국민의힘 당헌은 대선 예비후보자 등록을 대통령선거(2022년 3월) 240일(약 8개월) 전부터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는 다만 윤 총장의 정치권 진출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말을 아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정치문화플랫폼 하우스(How‘s)에서 윤 총장의 정계 진출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반드시 정치하겠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윤 총장의 퇴임 후 진로에 대해 김 위원장은 “변호사로서 사회활동으로 봉사를 할 수도 있다”며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내가 뭐라고 얘기할 순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