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30원대로 급락(원화 강세·달러 약세)하면서 달러 예금에 이달 들어서만 4조원 가까운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환율이 결국에는 오를 것으로 보는 자산가와 기업이 많아지며 달러에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가 높아지자 시중은행들도 각종 상품을 내놓으며 ‘달러예금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23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에 따르면 이달 15일까지(신한은 21일까지) 이들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477억6,700만달러로 지난 9월 말보다 34억100만달러 급증했다. 절대 잔액은 올 들어 최고치다. 증가폭도 원화로 환산하면 3조8,600억원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A은행이 보름 사이 21억4,700만달러(약 2조4,400억원)나 늘어나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고 B은행도 5억2,600만달러(약 6,000억원) 불어났다. 금액은 개인과 기업의 달러예금 잔액을 합한 수치다.
"지금이 저가 매수 기회" 달러 사들이는 자산가 |
정성진 국민은행 PB팀장은 “달러예금은 이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자수익보다는 환차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사람이 많다”며 “달러화로 표시되는 자산에 투자하기 위해 사들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의 한 PB는 “자신의 포트폴리오에서 달러 자산이 부족해 투자를 늘리려고 마음먹었던 고객들이 그동안 환율이 1,200원대에서 움직이면서 매수 타이밍만 보고 있었는데, 환율이 떨어지자 보유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중에 돈은 많이 풀렸는데, 각종 규제로 부동산 투자의 길이 좁아진 것도 달러예금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시중은행의 한 자산관리 본부장은 “환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고객들은 오히려 지금이 달러를 살 수 있는 저가 매수 기회라고 보고 달러예금액을 늘리고 있다”며 “자산가뿐만 아니라 법인 쪽 달러예금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역사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외환당국이 환율 하락을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달러를 사들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1,000달러 예금하면 1만원 포인트" 은행, 달러예금 유치전 한창 |
하나은행은 지난달 초 ‘일달러 외화적금’을 출시했다. 한달여 만에 가입 계좌 수 1만개, 가입금액 100만달러를 돌파했다. NH농협은행 역시 16일부터 원화 적금과 동시에 가입하면 0.1%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주는 ‘NH주거래우대 외화적립예금’을 출시했다.
다만 무분별한 달러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시장에서는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 후보가 11월 선거에서 당선되면 미중 무역분쟁의 파고가 다소 누그러지면서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고, 원·달러 환율도 1,100원대가 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환테크는 글로벌 투자은행(IB)도 수익을 내기 어려운 고난도의 분야”라며 “면밀한 검토를 거친 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