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전자의 업 개념을 양산 조립업으로 파악했다. 그런 만큼 협력업체가 중요했고, 이를 키우지 않으면 모체가 살아남기 어렵다고 봤다. 이 회장이 회장 취임 이후 줄곧 협력회사와의 동반성장에 대해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에는 협력회사와 비전을 공유하지 않으면 초일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완성품의 질은 그 제품에 들어간 모든 부품 가운데 가장 낮은 품질의 제품에 수렴될 수밖에 없기에 부품 회사 하나하나가 모두 일류여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대·중소기업 간 상생보다는 협력 업체에 대금 결제를 미룬다든지 납품단가를 지나치게 깎는다든지, 기술을 함부로 도용한다든지 하는 일이 적지 않은 사실을 떠올리면 우리 경제 주체가 더 분발해야 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이 회장은 일찍부터 제조경쟁력과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2인 3각 식 상생 정신’을 강조해왔다. 만일 삼성이 애플처럼 해외에서 위탁 생산하는 순간, 국내 전자부품산업이 모두 무너진다고 봤다. 일본의 인쇄회로기판(PCB) 산업도 일본의 전자기업들이 엔고 영향으로 너무 일찍 제조를 포기하는 바람에 맥없이 무너졌다. 삼성이 자체 제조경쟁력을 포기하지 않고 물건 만드는 걸로 승부를 거는 덕에 협력업체가 같이 성장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제조업 운영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말이 아무런 주저 없이 기업인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점은 우리 경제의 위기 신호로 볼 수 있다. 과도하게 기업 경영권을 옥죄는 입법, 지나친 규제를 남발하는 정치권과 여기에 휘둘리는 관료가 각성해야 하는 부문이다.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중소 협력사들의 모임인 협성회의 김영재 회장도 평소 삼성이 자체 제조를 하고 있는 점을 감사히 여기고 있다. 삼성이 물건을 만들어내자는 기운과 뜻이 살아있기 때문에 폭스콘 등에 위탁생산을 안 한다고 보는 것이다. 김 회장은 삼성과 애플의 차이점을 두고도 삼성은 상생협력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지만, 애플이 상생팀을 운영하거나 중소 협력사를 위하는 게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이 협력업체의 대우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997년에 이미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부부와 같은 관계”라고 설파했다. 어느 한쪽도 혼자서는 불완전하며 힘을 합쳐야 제대로 기능을 발휘한다고 봤다.
그런 인식의 결과 삼성은 경쟁력있는 협력사를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육성하고 협력사의 인재 발굴에 동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지난 2009년에는 ‘혁신기술 기업협의회’를 구성해 거래 여부와 관계없이 핵심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중소기업에 삼성과 공동 개발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 2011년에는 삼성의 9개 계열사가 1차 협력사 3,000여개 업체와 협약을 맺고, 1차 협력사는 다시 2차 협력사 2,000여곳과 협약을 맺어 모두 5,208개 업체가 삼성의 동반성장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협약을 맺은 협력사에게는 재무건전화를 위해 연구개발비를 지원했고, 이 밖에도 현금성 대금지급, 핵심부품 공동 연구개발, 특허출원 지원 등에 나섰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상생협력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상생협력센터를 CEO 직속 조직으로 개편하고, 부사장을 조직장으로 임명했다. 상생협력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져 고객에게 더 나은 제품으로 보은하는 길인 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최고 경영진이 주도적으로 챙기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셈이다. 이 회장의 상생경영 비전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회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