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아들딸을 한 명씩 두고 미국에 살던 엘리엇 핸들러(Elliot Handler)와 루스 핸들러 부부는 아들을 위한 장난감은 많았지만 딸을 위한 장난감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 루스는 10대의 소녀 인형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장에 아기 인형들은 많았지만 늘씬한 몸매의 소녀 인형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 독일 여행 중 유심히 봤던 성인용 인형 ‘빌트 릴리(Bild Lilli)’를 모델로 삼아 실행에 옮겼다. 지구촌의 소녀라면 누구나 알 정도인 ‘바비 인형’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났다.
남편 엘리엇과 그의 친구 해럴드 맷슨(Harold Mattson)은 바비인형을 만들 마텔(Mattel)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회사 이름은 맷슨의 ‘Mat’와 엘리엇의 ‘El’을 합성해 만들었다. 1959년 핸들러의 딸 이름 ‘바바라’를 따서 만든 바비인형을 첫 출시했다. 이후 마텔은 약 6년 만에 연 매출이 1억달러(약 1,125억원)를 기록해 포춘 500대 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비치는 바비의 스토리텔링은 성공적인 브랜드 홍보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윌로우라는 마을에 사는 여고생인 바비가 남자친구 ‘켄’과 열애하다 헤어지고 재결합했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여동생으로는 스키·첼시, 친구로 미지·엘렌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한 중소기업이 하청 생산했고 1980년대 들어 ‘영실업’이 국내시장 라이선스를 얻어 생산에 나섰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바비의 인기도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시들해졌다. 마른 백인 여성을 아름다움의 표준으로 정형화한다는 여론의 뭇매도 맞았다. 고전하던 마텔이 올해 3·4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0% 늘어난 16억3,200만달러, 순이익은 348% 급증한 3억1,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자녀들이 집 안에서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빠지자 부모들이 관심을 돌리려고 바비 인형을 많이 샀다고 한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다. 많은 기업이 요즈음 어렵지만 바비 사례를 교훈 삼아 권토중래를 노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오현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