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는 제게 발화점인 것 같아요. 이 작품으로 인해 또 다른 작품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작품이자, 배우로서의 제 꿈을 연장시켜준 작품이라 끝나고 나서도 제 마음 한편에 크게 남을 것 같아요.”
2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만난 배우 곽시양은 지난 주말 종영한 SBS ‘앨리스’를 향후 몇 년 동안은 자신의 가슴 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을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배우의 입지를 다지는 데 큰 힘이 돼준 ‘앨리스’에 감사함을 표하며, 아직 남은 종영의 여운을 달랬다.
“촬영할 땐 잘 몰랐는데 끝나고 나니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이 많이 남아요.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왜 저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지?’하는 미안함, 저보다 더 고생한 스태프들과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준 감독님께 감사한 마음이 굉장히 많이 남는 것 같아요.”
그가 출연한 ‘앨리스’는 죽은 엄마 박선영(김희선 분)을 닮은 여자 윤태희(김희선 분)와 감정을 잃어버린 남자 박진겸(주원 분)의 마법 같은 시간여행을 그린 휴먼SF. 곽시양은 극 중 미래에서 온 인물이자 시간여행 시스템 ‘앨리스’의 가이드 팀장 ‘유민혁’을 연기했다.
유민혁은 자신의 임무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택할 만큼 우직하고 책임감 넘치는 원칙주의자.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밝고 활달한 성향의 곽시양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유민혁을 연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많이 힘들기도, 불편하기도 했어요. 극에서 민혁은 웃는 적이 없더라고요. 제 성격은 솔직하고 유쾌한 것들을 좋아하는데…드라마 속 유민혁은 항상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내가 지켜야할 것들도 너무 많다보니, 저랑은 상반되는 그런 부분들이 좀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유민혁을 표현해내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곽시양은 동료 배우 김희선과 주원 덕분에 캐릭터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는 “희선 누나와 주원 씨에게 굉장히 많이 고마웠어요. 두 분이 연기하실 때 순간적인 몰입도가 뛰어나신데 저도 두 분의 연기를 받고서 유민혁이 저절로 나오는듯한 느낌을 받았어요.”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희선 누나였어요. 누나가 등장하면 모두가 좋아했어요.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졌고, 누나도 그렇게 많이 리드해 주셨죠. 촬영하면서 선배님이 이렇게까지 편하게 해준 적이 거의 없어요. 얼음공주 같은 느낌? 무서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친누나 같이 대해주시고, 생일 선물도 챙겨주시고, 세심한 부분들에 감동 받았죠.”
“동갑인 주원 씨는 굉장히 애교가 많아서 저를 ‘아빠’라고 불렀어요(웃음). 드라마 상에서 아버지라, 희한한 경우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주원이에게 애착이 많이 가더라고요.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서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걸 잘 아는 오랜 친구의 느낌이었어요.”
훈훈한 촬영장 분위기와 달리 ‘앨리스’에는 자동차 추격전을 비롯해 긴장감 넘치는 고난이도 액션 장면이 많았다. 곽시양은 동료 배우 주원과 액션 스쿨을 가서 두 달 정도 꾸준히 연습하고 호흡을 맞추며 액션 준비를 해왔다. 그 덕분에 촬영장에서 서로 간 액션 합이 저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부상을 당하는 아찔한 상황도 일어났다.
“액션 씬의 경우, 추운 날 찍는 게 굉장히 많았어요. 그 날도 날씨가 굉장히 추웠고 몸도 얼어 있는 상태였고, 바닥도 차가웠죠. 긴장하고 이러다 보니 잘못 떨어졌었나 봐요. 당시엔 괜찮았는데 ‘왜 이렇게 아프지’ 싶어서 (병원에) 갔더니 갈비뼈에 금이 갔었죠. 그래도 한 달 정도 있으니 금방 괜찮아졌어요. 아직까지는 금방 낫더라고요(웃음).”
잘 웃고, 농담으로 상대방과 분위기를 편하게 할 줄 아는 곽시양이지만 일하는 부분에 있어선 자책을 많이 하고, 본인에게 점수를 박하게 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작품을 할 땐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늘 일할 때만큼은 잘 해야 된다는 부담감, 저 스스로 너무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고민도 많고 해서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아요. 완벽도 좋지만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아야지, 인정받지 못하면 이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중에게 인정받아야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일할 때만큼은 노력과 최선을 다합니다.”
올해 데뷔 7년차에 접어든 곽시양은 다양한 작품으로 매년 쉬지 않고 안방극장을 찾았다. 아직 슬럼프를 겪어본 적이 없다는 그는 그 비결이 ‘성실함’인 것 같다고 밝혔다.
“전 배우로서 재능은 없었고, 노력파에요. 제가 스스로 잘 못한다고 많이 느끼다 보니 성실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성실하려고 하다 보니 다른 분들이 좋게 봐주신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고 전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은 케이스에요. 데뷔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준다는 것만 봐도 굉장히 운 좋게 빠른 속도로 올라온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양 타운’을 짓는 게 인생 목표라는 곽시양. 그는 집 8채 정도를 지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내주고, 함께 다 같이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살아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려면 아주 오랫동안 길게 일해야 한다며 웃었다.
“아직은 꾸준히 열심히 해야 될 때라고 생각해요. 한 참 멀었죠. 요즘 시대가 너무 빨라 사람들에게 금방 잊혀지는 것 같아요. ‘어딘가에 노출돼야만 나도 잊혀 지지 않겠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제 이름만 듣고도 아실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