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화웨이 압박 정책’에 잇따라 동참하고 있다. 중국이 관계 형성에 공을 들였던 중동부 유럽에도 미중 갈등의 여파가 번지는 모습이다.
27일(현지시간) 미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지난주 미 국무부는 슬로바키아와 북마케도니아·코소보·불가리아 정부와 5세대(5G) 네트워크 구축 과정에서 장비공급 회사를 선정할 때 ‘외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지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포린폴리시는 협약에 특정 국가와 기업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 당국의 스파이 행위에 가담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 화웨이와 ZTE(중싱통신)를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슬로바키아의 이반 코르코크 외무장관은 이번 협약이 “5G의 보안을 확실히 하려는 우리의 국가적 노력과 완전히 합치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모든 사람이 (안보와 관련된) 위험을 알고 있다”며 “(슬로바키아는) 어떤 ‘백도어(back door)’ 행위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백도어란 개발자나 관리자가 컴퓨터 시스템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비공개 접속 기능으로 화웨이는 세계 각국에 수출한 통신장비와 휴대폰에 백도어를 설치해 정보탈취를 시도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슬로바키아의 결정은 중동부 유럽 국가가 미국과 유럽·러시아·중국의 경쟁 속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맞바람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중국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 중인 중국은 지난 2012년부터 중동부 유럽 국가와 정기협의체인 ‘16+1’ 정상회의를 주도하며 이들 국가와 밀착력을 높이려 했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한 듯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8월 중부 유럽을 방문해 러시아와 중국이 유럽에서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면서 중국 회사의 통신장비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포린폴리시는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통신장비 회사를 국제적으로 배척하려고 추진하고 있는 ‘클린네트워크’ 계획과도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영국과 프랑스·이탈리아·스웨덴 등 여러 유럽 국가가 자국 산업 보호와 안보를 이유로 화웨이와 ZTE 등의 장비를 5G 통신망 구축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0일 스웨덴이 화웨이 금지 정책을 발표하자 화웨이는 “우리는 민간회사”라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단순한 추정일 뿐”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