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산성이 낮은 이른바 좀비기업에 대한 퇴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가 기업 지원에 집중하고 있는데 신용공급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꼼꼼한 심사를 통해 좀비기업을 걸러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소속 이현창 과장과 이현서 조사역은 29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금융제약 점검’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최근 들어 금융제약의 정화효과가 약화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2008~2018년 우리나라 제조업 외부감사기업 9,522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금융제약은 금융기관이 기업의 신용위험이 높아져서 상환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여신을 줄이는 경우를 말한다. 과거에는 금융제약이 일어나면 투자를 위축시켜 생산성 증가를 저해한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금융비용이 오를 경우 저생산성 기업이 퇴출되는 정화효과가 부각되고 있다.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퇴출돼야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져 경제 전반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제조업 기업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2011년과 2017년에 금융제약을 경험한 것으로 봤다. 2017년에는 신용위험 확대로 금융규제가 강화됐고 가계부채 쏠림현상이 일어나면서 신용공급이 감소된 반면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기업 자금 수요가 늘어나던 시기다. 기업의 금융제약 여부는 내부자금 의존도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투자에 필요한 외부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없는 기업은 내부자금 규모와 관계없이 투자 규모를 정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기업 투자를 내부자금 규모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저생산성 기업의 추정계수는 2009년 0.122. 2010년 0.119를 기록한 뒤 2017년에는 0.004로 대폭 낮아졌다. 고생산성 기업의 추정계수는 2009년 0.071, 2010년 0.055를 보였는데 2017년에도 0.057로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추정계수가 높을수록 내부자금 의존도가 높아 금융제약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2011년에는 저생산성 기업이 금융제약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2017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생산성 기업의 경우에는 두 기간 모두 금융제약 영향을 받았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은 금융제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오히려 좀비기업은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정화장치가 사실상 마비됐다는 반증이다.
최근에는 금융제약이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정부의 정책금융 등 기업지원이 크게 늘어난 만큼 정화효과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과장은 “정부에서 기업 지원을 발표하고 있는데 신용공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생산성 기업 퇴출이 필요하다”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있을 텐데 생산성 수준에 대한 면밀한 평가를 통해 효율적 자원배분을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