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4류가 1류를 가르치는 나라

이재용 산업부 차장




한국 경제에 세계 1류 DNA를 심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영면했다.

고(故) 이 회장은 변방의 3류 전자업체였던 삼성전자를 글로벌 1등 기업으로 키웠다. 세계 1등이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시절 특유의 통찰력과 결단력으로 반도체와 스마트폰·TV 등의 분야에서 삼성전자를 세계 1위 기업으로 만들어냈다. 이 회장 덕분에 우리는 세계 1등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게 됐다.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난 시점에 국내에서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반기업정서로 똘똘 뭉친 정부와 정치권의 영향이 크다. 정부와 여당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빈부격차가 모두 대기업 탓이라고 몰아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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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정부 여당은 기업활동을 옥죄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분리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쳐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도록 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주주(오너) 경영을 ‘적폐’로 규정하고 대주주 대신 소수주주가 기업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여당은 심지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강제로 팔아야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과정을 살펴보면 대주주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정부 여당의 시각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 회장은 1970년대 모두가 반대하던 반도체 사업에 사재를 보태 뛰어들었다. 일본의 한 기업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 조롱했지만 결국 도시바·NEC·히타치 등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삼성전자에 밀려 나가떨어졌다.

1990년대 반도체 불황 때도 삼성의 대주주 중심 경영체제는 빛을 발했다. 당시 전문경영인 중심의 일본 기업들은 투자를 줄였지만 이 회장은 투자를 크게 늘리는 베팅을 했고 이후 반도체 시장의 패권은 삼성전자가 거머쥐었다.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소수주주와 전문경영인은 상상도 못할 결단들이다. 이 회장은 1995년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했다. 이 말로 고초도 겪었다. 이 회장의 표현에 빗대면 지금 우리나라의 4류 정치가 2류 기업을 훈계하고 가르치려 드는 셈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4류 정치가 1류 기업을 윽박지른다는 게 맞다. 삼성을 예로 들면 스마트폰과 TV·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남을 훈계하고 가르치려면 적어도 남보다 뛰어난 실력과 식견을 갖춰야 한다. 기업들이 반기업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여당의 행태에 허탈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ylee@sedaily.com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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