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행사의 주식에 투자해 대박을 터뜨린 셸던 애덜슨은 1960년대 말 증시가 얼어붙는 바람에 순식간에 재산 대부분을 날렸다. 부동산 중개업으로 재기에 나섰지만 이마저 실패한다. 반전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애덜슨은 1971년 작은 컴퓨터 잡지사를 인수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의 한 아파트 전시회를 찾는다. 애덜슨은 이 전시회를 아파트 관련 잡지사가 주최한 것에 힌트를 얻어 2년 뒤 댈러스에서 첫 컴퓨터 전시회를 열었다. 애덜슨이 컨벤션 분야의 귀재로 올라서는 싹은 이렇게 텄다.
1933년 보스턴에서 택시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난 애덜슨의 인생은 전형적인 오뚝이 인생이었다. 가난을 이기려 아이스크림 판매, 속기사, 모기지브로커 등을 전전했다. 그가 경험한 직업만 50여개에 달한다.
컴퓨터 전시회에 발을 담근 애덜슨은 아파트까지 팔아 ‘인터페이스’라는 전시회사를 차린다. 1979년에는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호텔에서 첫 컴덱스쇼를 개최한다. 한동안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박람회로 자리한 ‘컴덱스쇼’의 태동 순간이었다. IBM 등의 참여로 성공 가도를 달린 인터페이스는 1980년대 연간 2억달러 넘는 순익을 올렸다.
애덜슨은 대관료를 줄이려 내친김에 라스베이거스의 샌즈 호텔을 인수한다. 컴덱스 운영권은 손정의 회장에게 8억6,000만달러에 팔고 카지노와 레저를 결합한 복합리조트로 사업을 확장한다. 2000년대 들어 아시아로 무대를 넓혀 ‘샌즈 마카오’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로 대성공을 거두고 카지노 업계 대부로 우뚝 선다. 재산은 한때 400억달러에 달해 2006년부터 2년 동안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 부자 순위에서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에 이어 3위에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어려움에 처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의 성공으로 위기를 넘겼다.
샌즈그룹이 다시 기로에 섰다. 코로나19 이후 경영난을 겪으면서 샌즈엑스포컨벤션센터 등을 60억달러 규모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외신이 전했다. 애덜슨이 이번 파고도 잘 타고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영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