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카모라




2008년 5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남부 도시 나폴리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쓰레기 매립지를 군사구역으로 지정하고 군 병력을 동원하는 방안 등을 담은 긴급대책까지 발표했다. 시민들이 쓰레기 수거 중단에 항의해 곳곳에 불을 지르는 등 시위를 벌이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당시 환경비즈니스사업에 진출한 마피아 조직 ‘카모라(Camorra)’가 쓰레기를 제대로 수거하지 않고 다른 지역의 산업·화학 폐기물까지 들여와 사태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카모라는 16세기 나폴리의 한 감옥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1735년 발표된 칙령에는 카모라 등의 조직·기관에 도박장 설립을 허용한다고 기록돼 있다. 카모라라는 조직명은 입고 다니던 조끼를 일컫는 ‘캄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카모라는 원래 담배 밀수로 성장했지만 나중에는 수익성이 높은 마약이나 코카인에 집중하면서 세를 키웠다. 1990년대 들어 영화 ‘대부’에 나오는 시칠리아 기반의 ‘코사 노스트라’와의 전쟁에서 이겨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2006년 로베르토 사비아노가 카모라의 조직문화를 담은 책 ‘고모라’를 펴내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나폴리를 창세기에 나오는 타락의 도시 고모라에 빗댄 셈이다.


카모라는 코카인을 중남미, 헤로인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조달하는 등 글로벌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유연한 조직 운영과 신속한 의사결정 방식도 강점이다. 약 7,000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카모라는 120여개의 느슨한 연합체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와도 끈끈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 최근에는 포도농장·올리브농장을 인수하며 농산물시장에 진출하는 등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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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탈리아 정부의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맞서 카모라가 나폴리에서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야간통행 금지와 식당·술집 영업금지 조치로 카모라의 주요 수익원인 마약 거래가 위축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어도 끈질기게 버텨온 카모라가 코로나19 풍파 속에도 계속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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