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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IB씨] 자충수 둔 산은, '개미' 희생양 삼아선 안된다

<8>아시아나항공 감자 논란

매번 퀴즈로 시작하는 친절한IB씨다. 여러분의 흥미를 돋운다는 변명이 쉬이 먹혀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답을 찾기 쉬울법한,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퀴즈로 글을 시작한다. 자, 퀴즈다. 이어 나오는 사례에서 그룹 K의 정체는?

몇 해 전 두 차례의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운 그룹 K(벌써 눈치를 챈 독자가 있을 수 있다)가 있다. 둘 다 국내 시장에서 모두 수위권을 다투는 기업이었다.(어떤 업종인지, 몸값이 얼마였는지는 흥미진진한 퀴즈 진행을 위해 꼬리표를 뗐다.) 그룹 덩치가 급격히 커진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헌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달이 났다. 잇따른 대규모 M&A에 필요한 자금을 내부에 쌓아놨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터. 곤궁한 살림 탓에 외부에서 막대한 돈을 끌어왔고, 이게 화근이 됐다. 유식한 용어로 치자면 ‘승자의 저주’에 빠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증유의 경제위기마저 겹쳤다. 그룹 K도 염치불구하고 채권단에 손을 더 벌리는 것 말곤 방법이 없는 상황. 정상적인 은행이라면 이미 부실에 빠진 기업에 돈을 꿔 줄 리는 만무. 하지만 한국의 구조조정 역사엔 ‘대마불사’라는 불문율이 있었다.(“어, 이상한데. 한진해운이 있는데?”라는 날카로운 지적을 한 독자는 답을 맞힐 확률이 높다!) 또 이미 꿔준 돈을 떼이지 않으려면 채권단도 울며 겨자 먹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본잠식을 벗어나기 위해 감자(減資)가 결정됐고, 균등일지 차등일지 방식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다.




최근 뉴스를 부지런히 본 독자라면 쉬운 퀴즈다. 그렇다. 그룹 K는 금호아시아나다. 헌데 금호아시아나라는 대답은 반쪽짜리다. 이 금호아시아나가 과연 ‘몇 년식’일까? 10년 전 기업 관련 뉴스를 꼼꼼히 봤던 독자만 맞힐 수 있는 답이다. 정답은 ‘2010년식’ 금호아시아나다!

2010년 금호산업 先출자전환 後 차등감자... 채권단·대주주 먼저 부실책임

지금 금호아시아나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왜 느닷없이 2010년의 금호아시아나를 소환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가 당시와 너무 닮은꼴이라서다. 주체만 금호산업에서 아시아나항공으로 바뀌었을 뿐. 당시와 지금의 상황을 꼼꼼히 비교해보자. 똑똑한 여러분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채권단이 어떤 방식으로 감자를 결정할지를 말이다. 자, 이제 시계를 돌려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9년 12월 29일이었다. 당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로 인한 승자의 저주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당시 은행 등 금융기관이 금호아시아나에 꿔준 금액은 (놀라지 마시라) 18조원 가량! 대우건설 매각으로 회생의 전기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결국 허탕을 쳤다. 이를 주도했던 금호산업은 결국 채권단(당시도 주채권은행은 산업은행이었다)에 워크아웃을(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 신청했다.

바로 이튿날 산은은 금호그룹의 구조조정 방안의 얼개를 발표한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을 통해, 금호석유화학(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였다)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자율협약으로 정상화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자율협약은 뭐고, 워크아웃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는 또 뭘까. 아 어렵다. 그나마 쉽게 풀자면 이렇다. 자율협약은 가장 낮은 단계의 구조조정으로, 주로 흑자 도산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채권단의 100% 동의로 의사결정을 내리지만, 기업에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 워크아웃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근거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으로,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채권단 75%가 동의해야 한다. 기업은 채권단의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재무구조가 개선돼 자체 신용만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할 때 ‘졸업’할 수 있다. 법정관리는 파산법원이 관리인을 두고 회생이나 파산을 직접 결정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구조조정이다. 은행 채권뿐만 아니라 기업어음 등 상거래 채권까지 모두 채무조정 대상이 된다. (그래도 어렵다. 헌데 뭣이 중헌디~. 중헌게 아니니 일단은 넘어간다)

2009년의 세밑인 12월 30일, 산업은행이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 방안에 따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자율협약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2015년 다시 박삼구 회장의 품으로 돌아갔고, 그 후로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산업은행의 발아래 놓이게 됐다. /연합뉴스2009년의 세밑인 12월 30일, 산업은행이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이 방안에 따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자율협약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2015년 다시 박삼구 회장의 품으로 돌아갔고, 그 후로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산업은행의 발아래 놓이게 됐다. /연합뉴스


해를 바꾼 2월 박삼구 회장이 일종의 ‘각서(정확히는 경영책임 이행에 대한 합의서다)’를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워크아웃 절차가 시작된다. 해당 각서에는 그룹 오너 일가가 자택을 뺀 전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었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대주주의 부실경영 책임 문제를 일단락시키면서 구조조정의 동력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3월 14일, 금호산업 워크아웃 플랜 초안이 나온다. 부채비율을 300%대로 맞추기 위해선 2조5,000억원의 출자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당시 초안에 담긴 내용이었다. 통상 워크아웃은 대주주의 부실경영 책임을 묻기 위해 감자를 한 뒤 출자전환을 한다. 하지만 당시 금호산업은 당장 상장폐지를 피해야 했던 상황. 때문에 선(先) 출자전환 후(後) 주주별 차등 감자 방식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이 선택됐다. 그리고 그달 26일 채권단은 2조2,00억원으로 출자전환 규모를 확정한다.


8월 결정된 차등감자 비율은 지배주주는 100대1로, 금호석유화학과 소액주주 및 채권단은 6대1이었다.(이후 10월 주주총회를 거쳐 지배주주는 100주를 1주로, 금호석유화학과 소액주주 및 채권단 출자전환주식은 4.5주를 1주로 각각 병합하기로 차등비율이 조정된다. 출자전환과 감자 등으로 19.3%에 달하던 금호석유화학의 보통주 지분율은 0.68%까지, 우선주는 감자만으로 28.85%에서 1.79%로 낮아졌다. 박삼구 회장의 지분율도 2.14%에서 0.21%로 미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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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은 왜 균등감자 얘기 나올까... 차등둬야 감자 손실 대주주로
헌데 10년 전과 비교하면 아시아나항공의 감자는 논의는 방향이 사뭇 다르다. 차등감자는 사재출연과 함께 대주주에게 부실경영의 책임을 묻는 상식적 절차 중 하나다. (2014년 동부제철도 대주주 100대1, 일반주주 4대1로 차등감자했다. 물론 채권단은 산은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채권단 안팎에서 꾸준히 균등감자 필요성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물론 출처는 불분명하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미리 짚고 넘어가겠다. 박삼구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에 단 한 번도 사재출연 한 적이 없다. 2018년 4월 자율협약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통해 구조조정이 시작된 지난 3년간 말이다. 쉽게 말해 균등감자가 이뤄지면 박삼구 회장은 부실경영 책임을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물론 상황이 다르긴 하다. 당시엔 상장폐지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선 출자전환 후 차등감자를 단행했다. 국민의 혈세가 종잣돈인 정책금융기관의 돈이 들어가는 만큼 차등감자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으리라. 반면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산은 등 채권단은 감자에서 자유롭다.(아시아나항공에만 국한해서다. 좀 더 복잡한 문제는 글 말미에 나온다.) 차등이든 균등이든 손해 볼 일이 없는 셈이다. 어떤 쪽이든 최적(?)의 결과만 찾으면 된다. 그렇다면 최적의 결과는 무엇일까. (여러분의 양해가 필요하다. 여기서부턴 좀 어렵다.)

1. 우선 지분변화를 살펴보자. 앞서 언급했지만 차등감자는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인 금호산업에 부실경영의 책임을 묻는 방편이다. 2010년 당시 차등감자 비율(지배주주 100대1, 그 외 6대1)대로 단순 계산을 해보자. 금호산업의 주식 6,872만5,023는 68만7,250주로 쪼그라든다. 금호석유화학은 2,459만3,400주에서 409만8,900주, 소액주주의 주식 1억2,991만6,871주는 2,165만2,812주로 각각 줄어든다. 발행주식 총수도 2억2,323만5,294주에서 2,463만8,962주로 내려앉는다. 지분율은 금호산업이 2.6%, 금호석유화학이 15.5%, 소액주주는 81.9%가 변한다. 이 상황에서 산은 등 채권단이 8,0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게 되면 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말 그대로 국영기업이 되는 셈. 신속히 구조조정을 끝내고 되팔면 그만이다.(물론 산은이 지금껏 신속히 구조조정을 끝낸 뒤 매각에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게 함정.)

균등감자는 지분율에 변화가 없다. 구조조정으로 4조원의 정책자금을 쏟아부은 아시아나항공이 정상화에 성공했다 치자. 금호산업은 여전히 매각의 결정권을 쥔 대주주다.(물론 산은이 영구채 전량을 주식으로 전환하게 되면 대주주는 바뀐다. 다만 영구채 주식전환은 자본잠식 해소엔 도움이 안 된다.) 매각에 성공하게 되면 경영권 웃돈이 얹어진 구주(舊株) 매각 대금도 챙길 수 있다.

KDB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감자에 시동을 걸었다.연말까지 자본잠식률을 50% 밑으로 낮추지 않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내년까지 경영난이 이어질 경우 상폐위기까지 몰릴 수 있다. 소액주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차등을 둘까, 아니면 균등하게 감자를 할까. 키는 산은이 쥐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아시아나항공 보유 여객선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KDB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감자에 시동을 걸었다.연말까지 자본잠식률을 50% 밑으로 낮추지 않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내년까지 경영난이 이어질 경우 상폐위기까지 몰릴 수 있다. 소액주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차등을 둘까, 아니면 균등하게 감자를 할까. 키는 산은이 쥐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아시아나항공 보유 여객선이 이동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 더 큰 변수는 감자로 인한 주가 변동이다. 감자가 결정되면 주가는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다. 균등감자는 이로 인한 손실을 모두가 나눠 갖는 것이고, 차등감자는 손실을 대주주에게 몰아주는 방법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소액주주가 절반이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다. 주주총회에서 일반주주가 극렬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차등감자가 그나마 감자에 대한 주주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 지배주주 100대1, 일반주주 6대1의 차등감자 비율로 아시아나항공 감자를 시뮬레이션해 보자. 평균 감자비율은 8.4대1가량. 아시아나항공의 주가가 4,000원이라고 가정하면 감자 이후 재상장하는 주식의 가격은 3만3,774원이다. (물론 감자 결정으로 주가가 낮아지지 않는 것은 이론으로만 가능한 일.) 금호산업 보유주식의 시가총액은 2,749억원에서 249억원으로 열토막 난다. 반면 금호석유화학 보유 주식의 시가총액은 984억원에서 1,384억원으로, 소액주주도 5,197억원에서 7,313억원으로 증가한다. 되레 일반주주는 이득을 보는 셈. 현실에서처럼 주가가 내려가도 일정 수준까진 손실을 보지 않는다. 해당 시뮬레이션에선 주가가 2,840원을 밑돌아야 일반주주가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이 감자 이전보다 낮아진다.

자 여러분이 산은 회장이라고 하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누가 봐도 상식적인 차등감자일 수밖에 없다. 대주주의 부실경영 책임을 왜 일반주주가 뒤집어쓴단 말인가.

산은, 금호고속 지원에 발 묶여... 구조조정 실패 떠안나 떠넘기나
헌데 산은은 왜 이렇게 비상식적 선택지를 손에 쥐고 고민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이제부턴 조금이 아니라, 너무 어렵다. 다 건너뛰어도 된다. 마지막 결론 하나만 기억하자.)

우선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산업의 관계기업이지 종속기업이 아니다.(금호산업은 아시아나의 지분 30.77%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이사 선임에 영향을 행사하지 않을까. 누구도 모를 일이다.) 둘은 모자(母子) 회사가 아니라는 뜻. 재무제표로 연결이 돼 있는 종속기업 관계라고 하면 차등감자를 하더라도 모회사가 보유 주식의 평가손실을 당장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관계기업일 경우 대주주는 차등감자로 인한 보유 주식의 손상가치를 재무상태표 자본계정에 기타포괄손익으로 ‘당기’에 반영해야 한다. 차등감자를 하게 되면 금호산업과 그 연결 실체인 금호고속의 자본금이 줄어들고, 나아가 그만큼 부채비율이 치솟게 되는 것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은의 대출채권 건전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더욱이 산은은 아시아나항공 주식매매계약(SPA)이 무산된 이후 금호고속에 추가로 기안기금 4,000억원(산은의 결정적 자충수다!)을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통상 은행은 대출채권의 건전성(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가지로 분류된다)에 따라 충당부채를 쌓는다. 차등감자로 금호산업과 그 연결 실체인 금호고속의 부실이 커지면 산은이 가진 대출채권의 건전성이 나빠진다. 또 금호산업이 쥐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주식과 박삼구 회장 보유 금호고속 보유주식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도 문제. 산은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결정된 2019년 1조6,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이들 주식을 담보로 잡은 바 있다. 결국 차등감자로 인한 이런저런 손실을 산은이 모두 떠안아야 하는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이 된 셈이다.

산은의 선택지가 차등일지, 균등일지 점쟁이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다.(아, 이동걸 산은 회장은 제외다.) 다만 손실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이는 결국 둘 중 하나다. ‘개미’인 소액주주이거나, 불특정 다수의 국민(산은은 세금으로 돌아가는 국책은행이다)이거나. 적어도 박삼구 회장은 아니다. 상황이 이럴 진데 누구도 지난 3년간 구조조정의 실패를 묻는 이는 없다. 두고 볼 일이다. 이 책임을, 그리고 손실을 누구에게 떠넘길지. 희생양을 누굴 삼을지 말이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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