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모빌리티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기술 못지않게 디자인을 통한 브랜드 가치가 중요하다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는 게 현대차 안팎의 분석이다. 또 유능한 인사는 사임 여부나 시기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직책을 만들면서까지 영입해 기용한다는 측면에서 아버지인 정몽구 명예회장의 인사 스타일을 방불케 한다는 평가도 있다.
동커볼케 부사장의 역할을 보면 정 회장이 디자인 경영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당분간 독일에 머물면서 유럽 진출을 시도할 제네시스 브랜드와 현대차의 첫 전기차 전용 아이오닉, 수소전기트럭 등 친환경 모빌리티 분야의 디자인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동커볼케 부사장은 4년의 재직기간 동안 디자인의 방향성 정립과 전략 수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최고책임자였다”며 “디자인을 통한 브랜드 가치 향상을 수행할 최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브랜드별 디자인 개발의 경우 지금처럼 현대차와 제네시스는 이상엽 전무가, 기아차는 카림 하비브 전무가 전담하면서 쇼카와 콘셉트카, 신개념 모빌리티 등 선행 디자인 부문은 양사 디자인 담당과 동커볼케 CCO가 협업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주력이 될 제네시스 브랜드, 전기차, 수소차 등 첨단 모빌리티에 단순히 첨단 기술뿐 아니라 첨단 디자인을 입히겠다는 정 회장의 뜻이 반영된 인사로 보고 있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또 독일에서 해외 석학들과의 교류에도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동커볼케 부사장을 해외 인재 영입의 창구로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말 주요 임원인사를 앞두고 있다. 정 회장이 수장에 오른 뒤 처음 단행하는 대대적인 인사여서 이른바 ‘정의선 사단’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미래 모빌리티 선도, 디자인과 브랜드 가치 향상, 침체에 빠진 중국 시장 공략,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산적한 숙제에 대한 고민이 인사에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의선 사단의 핵심인물로는 김걸 기획조정실장 사장, 공영운 전략기획담당 사장, 이광국 중국사업총괄 사장, 장재훈 국내사업본부장 겸 제네시스사업부장 부사장 등이 꼽힌다. 김 사장은 순환출자로 얽혀 있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임무를, 공 사장은 정부 정책 변화에 맞춰 미래 전략의 틀을 짜는 역할을 맡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인 이 사장은 중국 시장 공략을 책임지고 있으며 장 부사장은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항공연구총괄본부장 출신인 신재원 부사장, 수소차 개발의 핵심 주역인 김세훈 전무, 자율주행기술 개발을 책임진 장웅준 상무 등이 주목되고 있다.
해외 영입 인재들의 거취도 관심사다. 우선 현대차의 첫 외국인 연구개발(R&D) 총괄인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이 최근 현대차 보유주식을 전량 매각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비어만 사장은 지난달 28일 현대차 432주(7,236만원)를 모두 팔았다. 업계에서는 비어만 사장이 조만간 현대차그룹을 떠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현대차 측은 “개인 의지에 따라 매도한 것일 뿐 거취와는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인 호세 무뇨스 사장, 상용개발 담당인 마틴 자일링어 부사장, 파워트레인 담당인 알렌 라포소 부사장 등도 정 회장이 영입한 해외 인재들이다. 현대차 안팎에서는 연말 인사에서 계열사 부회장에 포진한 정몽구 명예회장 최측근 인사들의 거취도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