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공개 사표 던진 경제 수장, 당·청에 소신 굽혀야 했던 순간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홍 부총리가 제출한 사직서를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홍 부총리가 제출한 사직서를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공개 사의 표명’ 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 2개월 간 대주주 요건을 놓고 갑론을박이 전개된 데 대해 책임을 지는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그간 정치권, 특히 여당이 매번 정부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해온 것에 대해 노골적으로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 부총리는 23개월 간의 재임 기간 동안 유독 당과 청와대와 충돌하며 소신을 꺾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갑자기 사표 제출 사실을 밝히자 회의장엔 일순 정적이 흘렀다. 첫 질의자로 나서 대주주 요건 논의 결과를 물으며 ‘10억 원 유지’ 답변을 끌어낸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직서’라는 말이 홍 부총리 입에서 나오는 순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랍고도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앞서 재정 준칙 문제를 두고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하며 홍 부총리를 압박했던 같은 당 김두관 의원은 당황한 듯 “엄중한 시기에 그런 입장을 말해 저도 참 당혹스럽고 아쉬움이 든다”며 “여러 질의를 준비했지만 서면 질의로 대체하겠다”며 질의를 짧게 마치기도 했다.

홍 부총리는 앞서 긴급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대학 등록금 반환, 재정 준칙 도입 등의 과정에서도 당과 수차례 충돌한 바 있다. 1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두고 여당과 맞섰으나 결국 기존 정부 안인 50%에서 여당 요구대로 70%로 확대했다 또 다시 전 국민 지급으로 방향을 틀게 된 게 대표적이다. 당시 홍 부총리는 총리 공관에서 진행된 비공개 당정청 회의에서 일괄 지급을 주장하는 당과 청와대의 압박에 “기록으로라도 (반대) 의견을 남기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2차 추경 규모를 대규모 증액하는 것은 어렵다는 홍 부총리의 의견을 전달받고 홍 부총리 해임까지 언급했던 사례도 있었다. 홍 부총리는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 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의 추경안은 재정 뒷받침 여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후 제출한 것”이라며 “지금은 우리 모두가 뜨거운 가슴뿐만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필요한 때”라는 글을 남겼는데 관가에서는 이 같은 발언이 이 대표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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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등록금 반환도 재정조달 방안은 외면한 채 나랏돈으로 하게끔 법이 개정됐다. 오는 2023년 도입되는 주식 양도소득세 공제 한도를 2,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상향한 것도 ‘동학 개미’를 의식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이후였다. 이달 초 기재부가 발표한 재정준칙은 여당의 압박으로 늦어졌고 국회 통과도 불확실하다. 4차 추경을 통해 지급한 2차 긴급재난지원금도 재정 문제를 이유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수차례 선을 그었으나 정치권의 요구에 결국 지급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일단 이번 공개 사의 표명 사태는 문재인 대통령이 홍 부총리의 사의를 반려하며 표면적으로는 종결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 규모를 두고 당정 간 갈등이 빚어져 홍 부총리의 거취가 도마 위에 올랐을 때도 “앞으로도 잘해달라”며 상황을 정리한 바 있다. 고비 때마다 홍 부총리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데에는 코로나 경제충격을 극복하고 한국판 뉴딜을 힘있게 추진하려면 경제사령탑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하고 문 대통령이 반려하는 것 자체가 재산세 및 주식 양도세 문제를 둘러싼 당정 간 대립 국면을 매듭짓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정부의 주식 양도세 강화안이 관철되지 못했다는 점을 두고 조직 내에서 리더십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사의 표명 및 재신임으로 잡음을 차단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이 문 대통령의 개각 구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관심이 쏠린다.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의 반려 결정을 전해 듣고도 “후임자가 만약 지명되면 청문회를 거칠 때까지, 물러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조만간 사퇴할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뒀다.

/세종=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

하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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