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은 지역주택조합에 대해 서울시가 칼을 빼 들었다. 지역주택조합은 해당 지역에 거주한 무주택자나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을 소유한 1주택 소유자가 조합을 결성해 주택을 새로 짓는 사업이다. 성공만 한다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지만, 실제 입주율이 20%대에 불과할 만큼 실현이 대단히 어렵다. 게다가 조합설립 기준이 허술해 각종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시는 그동안 지역주택조합의 인허가권자가 개별 구청장이라는 점 때문에 적극 나서지 않았으나 지역주택조합 피해가 줄을 잇자 직접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시는 불법사항이 적발될 경우 행정조치나 고발 등 강력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불법 지역주택조합을 제재할 수단이 많지 않은 만큼 지역주택조합 인허가 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 지역주택조합에 첫 실태조사 돌입=서울시는 6일 관내 지역주택조합 전체에 대한 실태조사에 처음으로 나선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조합원 모집을 신고한 지역주택조합은 물론 2017년 6월3일 주택법 개정 이전에 신고하지 않은 채로 모집 중인 주체를 대상으로 기본사항을 확인하고 현장조사를 할 예정이다. 현재 시가 파악한 관내 지역주택조합은 약 91곳이다.
서울시는 지역주택조합을 상대로 7월 개정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제대로 적용하는지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정부는 지역주택조합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조합설립 요건을 강화한 바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에는 사업 대상 토지 80%의 사용권을 확보하면 조합을 설립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추가로 소유권 15%를 확보해야 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조합업무대행자 자본금 기준도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렸다. 또 3년간 사업계획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2년 내 설립인가를 받지 못할 경우 사업 해산 여부를 결정하도록 요건을 마련했다. 대형 시공사와 이미 계약을 한 것처럼 허위 광고를 하거나 청약 철회에 관한 내용을 안내하지 않는 등의 광고도 제한하기로 했다.
시는 지역주택조합 홍보관 운영실태와 사업계획, 동의율 확보 등 진행사항을 파악하고 자금보관 신탁업자 대행, 연간 자금운영계획, 회계 서류 보관 의무 등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할 계획이다.
◇피해 막긴 역부족…제도 폐지 목소리까지=지역주택조합에 대한 기준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서울 주요 자치구는 이번 주택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기준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예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다. 이들은 부지 소유주가 주체가 된 재건축 사업도 십수 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부지 소유권 없이 시작하는 지역주택조합의 사업 방식이 기형적이라는 점을 문제 삼는다. 실제 최근 5년 서울에서 진행된 지역주택조합 사업 가운데 첫 삽을 뜬 비율은 4%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8월 기준으로 시내에서 진행 중인 지역주택사업장은 모두 73곳이다. 사업지 절반 이상인 41곳은 사업 초기인 조합원 모집신고 단계에 머물렀다. 관악구 봉천동의 편백숲1·2차(가칭), 구로구 구로동지주택(가칭)은 5년 넘게 조합원 모집 상태다. 3년 이상 조합원 모집 중인 곳도 송파구 거여역·거여역1지주택 등 10곳이었다.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 곳은 3곳에 불과했다. 광진구 한강자양과 동작구 상도역지주택은 2년 전 착공에 들어갔고, 도봉구 쌍문동 일대 주택은 골조공사 중이다. 사업진행이 오랫동안 정체됐거나 아예 구청에서 불가 판정은 받은 곳은 10곳으로 전체의 14%를 차지했다.
서울시 측은 “지역주택조합 사업 기준을 강화했지만, 제재 수단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라면서 “실태조사에서 위법 사항이 적발되면 시정명령·고발 등 행정 조치를 하고 법령 개정 등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제도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