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노믹스는 우리 경제에 선택을 강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 통상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와 달리 자유무역과 공정무역에 대한 지지를 보이겠지만 자국 우선주의 기조에는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든식 중국 견제’는 트럼프 정부와 같은 일대일 방식이 아닌 동맹국과 협력한 ‘반중연대’ 형태가 될 것인 만큼, 결국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참전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중국과 대척점에 설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산더미’ 무역적자에 보호주의 ‘본색’은 유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보호무역주의 기조 자체를 뒤엎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분쟁을 일으킨 도화선, 즉 대규모 무역적자는 여전한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 실제 무역분쟁 이후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감소 추세지만 지난 8월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최대치인 671억달러, 약 76조원에 달해 월간 기준으로 최근 14년 만에 최대치를 찍은 바 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부통령이던 시절 수석이코노미스트를 맡았던 제러드 번스타인 예산정책우선주의센터(CBPP) 수석연구원은 최근 국제금융협회(IIF)가 주최한 행사에서 “지금의 무역적자는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준”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같은 무역적자 확대는 바이든 후보가 다자체제 복원을 선언하기는 했으나 속내는 중진국 간 협력을 통한 ‘경제 블록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정부가 들고 나온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등의 형태를 이어받아 전략적 연대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방식이 ‘바이든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진단이다. 실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을 끌어들여 공동전선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보조금 제한이나 지적재산권·환경보호 등을 국제규범으로 내세워 동맹국과 연대하고 규범을 공유하지 않는 국가를 교역망에서 배제하는 형태로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후보가 수출입 상품에 대해 환경·노동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미국의 ‘보호주의 본색’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제품에도 자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처럼 까다로운 환경·노동 잣대를 들이댈 수 있고 이것이 자국 내 산업을 보호하는 도구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철강·자동차뿐 아니라 섬유화학·의류 등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 수출규제 장치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공조 요구가 본격화하면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취하고 있는 ‘전략적 모호성’은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현실도 있지만 무역확장법 232조 등 보호무역 조치에 대한 위협이 여전한 상황에서 미국의 동참 요구를 거절하기가 특히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를 남발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후보는 동맹국과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신규 조사를 무턱대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바이든 후보가 국내 산업 기반을 뒤흔들 카드를 쥐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사실상 ‘최악’이었던 미국과 세계무역기구(WTO)의 관계도 호전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소한 WTO 규범과 충돌하는 무역규제 조치의 남용이나 슈퍼 301조, 무역확장법 232조 등의 확대적용 확률은 낮아지는 것이며 이는 한국으로서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트럼프 정부가 마비시키다시피 한 WTO 상소기구가 일부 복원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바이든 정부 출범이 WTO 사무총장 선거 최종 선호도 조사에서 다득표에는 실패했지만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는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유 본부장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트럼프 정부에서 결정된 만큼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번복할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그러나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는 미국무역대표부(USTR) 차원에서 이뤄지는 만큼 ‘정권교체’와는 무관하다는 예상도 많다.
중국 ‘역공’ 땐 韓 치명타 우려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국을 활용한 중국 때리기는 자칫 트럼프 행정부 시절보다 국내 경제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한국이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이 이를 이용해 완성재를 만들어 수출하는 산업구조 탓에 중국의 피해가 한국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미중 무역분쟁은 지난해 국내 성장률을 0.4%포인트 끌어내렸다. 특히 한국이 떠밀리듯 미국 편에 설 경우 대중 교역에 큰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의 수출액 중 대중 수출 비중은 약 25%에 달해 교역망 다변화로 대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때처럼 강한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미국과 협력할 부문과 거리를 둘 부문을 구분한 뒤 사안별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되 노골적으로 미국 편에 서는 일은 피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에 어느 정도 동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중국에 설명하면 사드 보복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 고립돼가는 중국이 비교적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한국마저 적으로 돌리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미중 갈등의 파고만 잘 넘기면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국내 경제에 득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바이든 후보가 동맹국과의 협력을 중요시하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무분별한 보호무역 조치는 잦아들 것이라는 기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바이든 후보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예고한 만큼 국내 기업의 설 자리도 넓어질 것이라는 관측 역시 제기된다. 실제 현대경제연구원은 바이든 후보 당선 시 미국 경기반등에 따른 한국의 총수출증가율 상승 압력과 경제 상승 압력이 각 2.2%포인트, 0.4%포인트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정부 관계자는 “다자주의나 국제규범 준수를 표방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변화에 대비할 시간을 더 줄 것”이라고 봤다. 통화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성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었다고 신뢰를 훼손하면서까지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제로금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세종=김우보기자 조지원기자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