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인 질 바이든(69) 여사는 ‘조용한 내조’로 미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질 여사가 사상 처음으로 본업을 따로 둔 미국 영부인이 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 그는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이민자 등 소외계층에 영어를 가르치는 전업 교수다. 지난 2009년 남편이 부통령이 됐을 때 그는 이미 유급 일자리를 가진 최초의 부통령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남편이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을 지낸 워싱턴 정계의 실력자였음에도 교사라는 본인의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독립생계를 유지한 결과였다. 질 여사는 남편의 대선운동을 돕기 위해 1981년 딸 애슐리가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올해 휴직했다. 자신이 남편의 외조에 전력투구하지 않아 선거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후회가 클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전히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설명했다. 이 경우 질 여사는 백악관 안주인 외에 다른 본업을 가진 첫 번째 퍼스트레이디 사례가 된다.
질 여사는 선거 과정에서 ‘조용한 내조’로도 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WP는 질 여사가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러닝메이트 후보로 최종 낙점하는 과정을 비롯해 남편의 중대 의사결정에서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부통령 선정위원회 측은 후보군에 대한 초기 조사 결과를 바이든 부부에게 공동으로 제출할 정도였고 초기 후보 20명을 면접 대상인 11명으로 압축하는 과정에서도 질 여사의 ‘입김’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캠프 내 교육 관련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하기도 했다. 캠프 인사들 및 버락 오바마 행정부 참모들은 질 여사를 ‘바이든 박사’라고 부른다고 한다. WP는 질 여사가 현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보다는 훨씬 더 대중적이고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질 여사는 1975년 24세 대학생이던 시절 여덟 살 연상인 바이든 당선인과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바이든 당선인은 첫 부인과 사별한 후이고 질 여사도 이혼한 뒤였다. 바이든 당선인은 그해 3월 지역 전광판에 게재된 질 여사의 사진을 봤고 형 프랭크를 통해 그를 소개받아 데이트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1977년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질 여사는 델라웨어대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다. 잠시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다. 56세 때인 2007년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0여년간 공립고등학교와 2년제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영작문 등을 가르칠 때 학생들이 “바이든 후보와 무슨 관계냐”고 물으면 줄곧 “친척”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박사 학위 논문에도 미혼 시절 성을 앞세운 ‘제이컵스-바이든’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만큼 자신만의 독립성이 강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