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타인의 토지에 묘를 쓰고 관리를 해왔다면 계속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는 관습법이 헌법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묘지 조성을 위해 타인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인 ‘분묘기지권’이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 된다며 제기된 헌법소원 심판에서 7대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1990년 경기 부천에 위치한 임야를 부친에게서 물려받았다. 해당 토지는 부천시 역사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분묘가 설치돼 있었는데 A씨는 연고자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해당 분묘를 철거하고 유골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후 이 분묘를 관리하던 후손인 B씨가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B씨는 2015년 해당 지역에 분묘기지권을 취득했기 때문에 A씨가 자신의 허가 없이 묘지를 옮긴 것은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B씨 주장을 인정해 A씨에게 1,580만원의 손해 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A씨는 이에 대해 다른 사람의 땅에 20년 동안 문제 없이 분묘를 점유한 자는 분묘기지권을 취득할 수 있게 한 관습법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A씨의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관습법으로 분묘기지권이 인정된 만큼 전통문화 보호 차원에서 해당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임야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기 훨씬 전부터 용인됐던 관습이 법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라며 “관습법의 위헌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 전통 문화를 통해 유지돼 온 우리 공동체의 이익을 적절히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토지의 소유권이라는 경제적 가치보다 후손들이 조상을 기릴 수 있는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임야의 경제적 가치가 커지면서 토지 소유자가 이를 사용·수익하지 못해 입게 되는 손실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토지의 경제적 가치가 상승했다는 이유만으로 분묘설치 기간을 제한하고 이장을 강제한다면 자손들에게 그 비용의 부담이라는 경제적 손실을 넘어 정서적 애착관계 및 유대감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