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에 놓인 택배 기사를 보호하는 내용의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택배법) 제정안’에 대해 경쟁관계에 있는 화물업계가 시장 잠식을 우려해 반발하고 나섰다. 화물업계는 해당 제정안에 대해 “택배 종사자가 아닌 택배 사업자를 위한 법안”이라며 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근로자 과로 등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 자칫 관련 업계 기득권 다툼으로 변질될 수 있어 입법 과정에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택배법 제정안은 8일 현재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 계류돼 있다. 제정안의 요지는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화물운수법)에 녹아있는 택배 관련 내용을 따로 떼어내 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특히 국토교통부 산하 생활물류서비스산업정책협의회 설치, 표준계약서 마련, 과로방지 등 택배업 종사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택배산업 발전을 도모하는 내용이 폭넓게 반영됐다. 제정안에 대해선 장시간 노동에 대한 근본 대책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전국택배연대노조는 우선 택배법의 첫 발을 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
반면 전국화물연합회·전국개별화물연합회·전국용달화물연합회 등 화물 3단체는 택배법에 대해 “기존 사업용 화물차운송업계를 붕괴시킬 뿐 아니라 택배업체 발전과 택시기사 권익보호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제정안은 택배차량이 일반화물을 나를 수 없도록 규제를 담아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미 화물 물품이 대부분 규격화돼 있고, 일반물류와 생활물류의 구분이 사라져 해당 규제는 유명무실하다는 게 화물 3단체의 지적이다.
화물 3단체는 택배차량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하고 있다. 영업용 화물차의 경우 허가제에 따른 총량 규제인 ‘증차 제한’(친환경 화물차는 예외)을 받고 있으나 택배전용 화물차는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여서 무한히 차량을 늘려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물업계 관계자는 “현재 택배차량이 (시장을 침범해) 일반화물을 운송하는 행위가 많은데 택배법이 제정되면 그런 행위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택배법을 따로 떼어 제정할 게 아니라 기존 화물운수법 체계 내에서 통합 관리하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택배 기사 근로환경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물 3단체의 반발에 대해 택배업계는 ‘밥그릇 지키기’라고 보고 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은 개인택시처럼 허가제로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새로 화물차를 몰려면 기존 화물차주로부터 현재 2,000만~3,000만원의 웃돈(프리미엄)을 주고 기존에 허가 받은 번호판을 사야 한다”며 “택배법 제정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택배업이 활성화돼 택배차량의 진입이 늘어나면 기존 영업용 화물차의 번호판의 웃돈 시세가 떨어질 것으로 우려해 입법을 반대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고 지적했다. 화물운수법으로 통합관리하면 된다는 주장에는 “영업용 화물차와 택배차량이 나르는 화물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법으로 통합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영업용 화물차는 주로 대량의 화물을 취급하지만, 일반 택배차량은 개인고객 등을 상대로 한 소량의 화물을 취급한다”고 반론을 폈다.
용달협회비 납부 문제도 화물단체가 택배법을 반대하는 이유라는 게 택배업계의 해석이다. 택배일을 하기 위해선 화물운수법에 따라 ‘화물운송종사자격증명’을 받아야 한다. 용달협회는 초기 5만원 안팎의 등록비와 함께 매달 택배기사 개인별로 서울 기준 8,500원의 협회비를 챙기는데, 이 과정에서 사실상 협회 가입이 강제된다는 지적이다. 한 택배기사는 “협회비를 안 내면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인) ‘배’자 번호판을 안 내준다”고 전했다. 반면 용달협회 관계자는 “안내사항 우편 발송 등 관리비용을 청구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