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1월 9일,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가 포드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젊은 나이(44세)에 포드 가문 출신이 아닌 최초의 포드 자동차 사장이 된 그는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정작 해가 바뀌자마자 그는 사장직을 내려놓았다. 대신 택한 게 미국 국방부 장관. 역대 최단명 포드 사장인 그는 1968년까지 펜타곤을 지키며 최장수(7년 1개월) 미국 국방장관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맥나마라가 국방장관에 지명된 사연이 극적이다. 43세 젊은 나이에 3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는 나이 많은 군부 장성들을 상대하기 위해 경험이 풍부한 고령의 관료 출신을 고려하다 공화당원인 맥나마라를 골랐다. 케네디 당선자와 첫대면한 맥나마라는 ‘정부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다’며 손을 내저었다. 케네디는 ‘나도 대통령직을 잘 모른다’며 ‘둘이 같이하자. 재무장관이나 국방장관을 맡아달라’고 말했다.
일주일을 고민한 맥나마라는 인사권과 펜타곤 개혁을 전제로 국방장관 제안을 받아들였다. 연봉은 300만 달러(포드 사장)에서 2만 5,000달러(당시 미 국방장관 연봉)로 줄었지만 맥나마라는 어느 때보다 많은 일을 벌였다. 먼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국방예산에 칼을 댔다. 오늘날 서방세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국방기획관리제도(PPBS)와 ‘비용-효과 분석’ 제도가 이때 처음 군에 들어왔다.
지도력도 있었다. 쿠바 위기에서 고위 군 장성들이 ‘미사일을 운반하는 소련 수송함을 격침하자’는 강성 발언을 쏟아내자 ‘전쟁은 대통령만 전권을 갖고 있다’고 일갈한 사례가 유명하다. 맥나마라처럼 평가가 엇갈리는 사람도 드물다. 역대 최고 연봉을 받은 하버드대 조교수, 미 육군항공대의 전략을 짠 중령, 포드를 살린 회계관리의 천재, 미군을 개혁한 최장수 국방장관으로 알려져 있으나 세계은행 총재로서 국가 간 빈부 격차 해소에 힘을 쏟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의 경제개발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혹평도 따른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09년 ‘헛된 전쟁의 설계자, 93세로 사망’이라는 그의 부음 기사를 실었다. 베트남 철수를 추진하다 존슨 대통령과 불화를 빚어 장관직에서 내려왔지만 초기 참전을 주도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라크 전쟁을 적극 반대했던 말년의 그는 자서전을 통해 베트남에서 판단을 잘못했다며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적을 일부러 오해하지 말고 이해하라. 아무리 대치하더라도 지도자들은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