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소수계에 대한 민주당의 오해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상당수 흑인·무슬림 트럼프 지지

다문화 수용 민주당 실망 컸을것

보호 아닌 동등 대우 '정규 미국인'

소수계 집단의 최대열망 기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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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한 미국인의 수는 1억4,000만명을 웃돈다. 그리고 이제 정치평론가들은 이들이 내린 선택의 ‘의미’를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번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거부감의 표시였다. 현역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사례는 지난 125년 동안 단 다섯 차례에 불과했고 이제 트럼프가 그들의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직접투표에서도 워터게이트의 여파 속에 대통령직을 승계했던 제럴드 포드를 상대로 지미 카터가 완승을 거뒀던 당시의 기록보다 훨씬 큰 표 차이로 바이든에게 뒤졌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심하게 분열된 상태다. 탄핵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침체 등 연이은 위기를 거치면서 결속력을 다진 공화당 유권자들은 트럼프에게 몰표를 던졌고 민주당 지지자들 역시 유사한 선택을 했다. 이제 양극화는 웬만한 사건이나 후보의 업무수행 역량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고 종파적이며 실존적이다. 사실 운동경기에서도 연고팀이 일방적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응원을 이어가는 것이 팬의 충성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다.

이번 선거를 통해 트럼프를 철저히 배격하고 비뚤어진 정치판의 궤도 수정을 희망했던 민주당은 아마도 큰 실망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들의 기대는 지난 2018년에 치러진 중간선거의 고무적인 성과와 올해 선거에서 민주당의 완승을 점친 각종 여론조사 탓에 잔뜩 부풀어 올랐지만 2020년의 여론조사는 2016년의 전망만큼이나 부정확했다.

특히 민주당 입장에서 가장 속 쓰린 점은 다문화주의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같은 운동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바로 그해의 선거에서 트럼프가 (비록 전체 흑인 투표수의 12%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1996년 이래 그 어떤 공화당 대선 후보보다 더 많은 흑인 표를 가져갔다는 사실일 터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는 무슬림 표의 35%를 수중에 넣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아마도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부분적으로 민주당 전략가였던 제임스 카빌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명언은 아직도 옳다. 트럼프 치하에서 번영을 누렸던 여러 소수 집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이로 인한 경제붕괴의 책임을 트럼프에게 돌리기를 꺼렸다. 이들에게 민주당은 경제봉쇄, 공화당은 경제재개를 연상시키는 정당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코로나19가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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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다문화주의라는 민주당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오랜 개인적 느낌을 근거로 이 같은 결과를 풀어보려 한다. 민주당의 다문화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대단히 다양한 종족과 인종 및 종교 그룹들을 ‘소수계’라는 단일체로 뭉뚱그려놓고 이들 모두에게 단일한 접근법을 적용하려는 맹점을 지닌다. 다시 말해 민주당은 소수계 그룹들 전체가 심각하고 조직적인 차별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필요로 한다는 접근법을 택했다. 이는 철저히 흑인들이 겪은 경험에 뿌리를 드리우고 있다. 흑인들에게는 딱 들어맞는 접근법이다. 미국은 흑인 가정을 깨뜨리는 가혹한 정책을 집행했고 그들을 인간 이하의 이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등 혹독하고 잔인한 차별을 일삼았다. 이 같은 역사적·구조적 장벽은 흑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겼고 차별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거의 모든 이민자는 족쇄를 찬 채 노예상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건너왔기에 흑인들이 겪어야 했던 쓰린 경험을 공유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역시 차별과 마주하거나 주류로부터 배척당한 듯한 느낌을 맛본 적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은 외국인들에게 세계의 그 어떤 나라보다 개방적이고 수용적이다.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가 다른 이민자들 혹은 그들의 자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음을 뜻한다. 백인 미국인들에 의한 혹독한 대우는 자발적 이민자인 우리의 정치관을 틀 짓는 결정적인 경험이 아니다.

우리 중 일부는 사회적 진보주의자이지만 다른 일부는 보수주의자다. 일부는 스스로 자립적인 기업가로 간주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정부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한다. 일부는 그들보다 뒤에 온 이민자들 혹은 흑인들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주류에 동화하려 든다. 필자가 아는 가장 지독한 미국의 인종주의자들은 바로 ‘소수계’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정책에 대해 훨씬 다양한 견해를 보인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흑인들은 19%만이 그들의 지역에 배치된 경찰 수를 줄여주기를 희망했다. 반면 61%는 현재의 경찰력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예산 삭감’과 같은 구호는 주류에 속한 흑인들의 눈총을 사기 십상이다.

필자의 예를 들어보자. 39년 전 미국에 처음 장학금을 신청한 후 필자는 종족이나 인종 배경을 묻는 말에 답하지 않았다. 흑인과 인디언 원주민 등 이 땅에서 심한 차별을 당했던 사람들의 비극에 무임승차해 소수계 우대 특전을 누린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솔직히 그보다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말대로 나의 피부색이 아니라 나라는 내용물에 의해 평가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많은 소수계의 최대 열망이 상대적으로 더 나쁘거나 더 나은 대우를 받지 않은 ‘정규 미국인(regular Americans)’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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