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결혼반지 대신 60만원짜리 그림…나중엔 3,000만원 됐죠"

■'세종 컬렉터 스토리' 두번째 전시

문웅 교수 소장품 120여점 공개

"미술품은 소비재 아닌 생산재

감상+값 상승…감가상각 없어

팔진 않지만 시세 알면 기쁨의 맛

작가 인연 중시…17년째 후원도"

미술품 컬렉터 문웅 전 호서대 교수가 랄프 플렉의 작품을 배경으로, 유병엽의 그림을 무릎에 올린 채 인터뷰하고 있다. /이호재기자미술품 컬렉터 문웅 전 호서대 교수가 랄프 플렉의 작품을 배경으로, 유병엽의 그림을 무릎에 올린 채 인터뷰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부지런히 가욋일을 한 덕에 쌈짓돈을 마련했다. 대학 2학년이던 문웅(69·사진)은 서예 동아리를 계기로 드나들던 표구점을 찾아가 그림 한 점을 사기로 했다. 호기로운 젊은 청년에게 점원이 의재 허백련(1891~1977)의 10폭 병풍을 권했다. 화가와 미술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광주 시내 50평 단독주택이 100만 원이던 시절에 30만 원짜리 작품”이라면 머뭇거릴 법도 했으나 젊은 문웅은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가져가겠다”고 했다. 1972년의 일이다. 병풍그림은 한동안 어머니 방 자개농 위에 올려진 채 구박받는 신세였다. 1977년 2월, 의재 선생의 타계 이후 표구점에서 다시 보자는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병풍을 다시 보자며 갖고 가더니 200만 원에 팔았다고 돈을 주더라고요. 끝이 아닙니다.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길을 가다 보니, 다른 화랑에 ‘내 병풍’이 펼쳐져 있는 겁니다. 얼른 들어가 ‘이 그림 요즘 얼마나 하나요?’ 물으니 300만원을 부르더라고요.”

그 날 결심했다. “한번 내 손에 들어온 작품은 어떤 경우라도 내 보내지 않겠다”고. 세종문화회관이 올바른 미술품 수집 문화 정착을 위해 지난해 처음 시작한 ‘세종 컬렉터 스토리’의 두 번째 전시가 문웅 전 호서대 교수를 주인공으로 10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 2관에서 개막한다. 반세기 가량 그가 모은 3,000여 서화미술 중 120점을 공개하는 자리다. 전시작은 김환기의 드로잉과 소품부터 이응노, 박고석, 이성자, 이대원, 배동신, 오윤, 우제길을 비롯해 랄프 플렉, 민웨아웅, 하리 마이어의 작품들까지 세대와 국경을 넘나든다.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세종문화회관에서 최근 만난 문 교수는 “나는 미술품을 소비재가 아닌 생산재로 본다”며 “소비재는 감가상각이 되지만 미술품은 감가상각 없이 보는 동안 행복하고, 설령 비싸게 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오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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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돈 때문에’ 그림을 모으는 것은 아니다. “가격과 가치는 다릅니다. 팔아본 적은 없지만 경매나 시세를 알아보고 가격이 올랐다는 작품은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이 나죠. 나중에 돈이 안 되겠다 싶어도 연구나 역사적 가치를 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서예사 계보를 되짚으며 수집한 작품들은 가격보다 가치를 우선한 것들이죠.”

미술품 컬렉터로 유명한 문웅 전 호서대 교수. /이호재기자미술품 컬렉터로 유명한 문웅 전 호서대 교수. /이호재기자


꼭 ‘돈이 많아서’ 그림을 산 것도 아니었다. 문 교수는 물려받은 재산이 많지 않았음에도, 20대 후반에 혼자 힘으로 건설회사를 차린 사업가 출신이다. 때로는 사업이 휘청이기도 했다. “술·담배·골프·도박을 않으니 쓰는 돈이 적고, 냉장고나 세탁기 바꾸자는 아내에게 ‘좀 더 아껴 쓰자’ 설득해서 그 돈으로 그림을 사죠. 1978년 결혼할 때 어머니가 ‘다이아’ 반지를 해주라며 60만 원을 주셨는데, 저는 반지 대신 오지호(1905~1982) 화백의 그림을 아내에게 선물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문득 궁금해 시세를 알아보니 그림은 3,000만원 가까이 값이 올랐고 반지는 250만~300만원 선이더라고요. ‘같은 돈’이 아니었던 것이죠.”

작품 구입의 또 다른 철칙은 ‘인연’이다. 남의 말에 혹하는 일 없이, 작가와의 인연이나 그림에 담긴 사연이 있어야 품에 안는다. 이번 전시 제목인 ‘저 붉은 색깔이 변하기 전에’는 형아우로 지내던 작가 홍성담이 민주화운동으로 옥살이할 적에 적어 보낸 엽서글에서 차용했다. 그는 “작품 구입은 작가 후원의 한 방법”이라며 “17년째 신진작가를 위한 ‘인영미술상’을 이어온 것도 실력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보이는 작가의 경우 내 안목을 믿고 수십 점씩 작품을 구입하기도 한다”고도 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컬렉터에 대한 인식변화를 기대한다는 그는 초보 컬렉터를 위해 “환금성 있는 작가의 작품을 사서 오르는 기쁨을 맛보길 권한다”며 “검증된 작가의 드로잉이나 판화 같은 작은 작품으로 시작해 보고, 이후 컬렉터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작가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고가의 해외미술품 구입은 국부 유출이 아니라 미래가치를 가진 문화자산에 대한 투자이고 ‘국부 유입’인 셈”이라며 “미술관 하나로 도시 전체가 달라진 스페인 빌바오의 사례처럼 문화가 살면 도시와 나라가 달라지는 만큼 미술에 대한 편견, 극소수 컬렉터에 대한 벽안시의 눈빛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29일까지.
·사진 이호재기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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